재일사회의 침묵 깬 4·3운동가들

재일사회의 침묵 깬 4·3운동가들
김창후 전 4·3연구소장의 '4·3으로 만나는 자이니치'
문경수·오광현씨 등 6명 진솔한 인터뷰 기록 실어
  • 입력 : 2017. 04.26(수)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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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 4·3운동가들.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경수, 오광현, 정아영, 고이삼, 장정봉, 조동현씨.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과 그 후손을 일컫는 말인 자이니치. 1923년 제주도와 오사카를 오가는 직항로가 생긴 이래 많을 때는 제주사람 5만여명이 일거리를 구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이들은 해방이 되자 귀향했지만 제주4·3 발발로 다시 일본으로 밀항해야 했다. 그 숫자가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4·3은 자이니치 제주인 사회에서도 금기의 단어였다. 재일교포들은 제주에서 수만명이 희생된 미증유의 비극을 입을 다문 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체험 세대들의 그같은 침묵을 깬 사람들이 자이니치 4·3운동가들이다.

제주4·3연구소장을 지낸 김창후씨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6명의 4·3운동가를 소개한 책을 묶어냈다.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 연구총서로 나온 '4·3으로 만나는 자이니치'다.

책에 등장하는 4·3운동가는 자이니치 2세로 주로 70~80년대 초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닌 이들이다. 2007년 이래 최근까지 그들과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만나온 저자는 문답 형식으로 그간의 인터뷰 내용을 풀어냈다.

문경수씨는 일본 4·3운동을 이끄는 정치학자다. 문씨는 조선학교를 다니며 체득한 민족의식, 일본에서 4·3운동을 하며 여러 저서를 집필하던 당시를 들려준다.

오광현씨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1998년 50주년 4·3행사를 오사카에서 여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반대했던 위령굿을 꿋꿋이 성사시킨 일 등을 회상했다.

리츠메이칸대 교수인 정아영씨는 자이니치 민족·인권운동에 힘써왔다. 2010년 제주4·3연구소 세미나에서 일본의 4·3운동 실태를 발표했던 정씨는 4·3운동의 미래 등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장정봉씨는 1993년 오사카 4·3행사를 거의 혼자 힘으로 치렀다. 거리로 나가 행사 리플릿을 붙이고 사회를 보는 등 1인 10역을 도맡았다. 장씨는 4·3당시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가 탄압 측에 섰던 경찰이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4·3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아픈 사연을 꺼내놓는다.

조동현씨는 소설가 김석범 선생의 매니저 역할까지 하며 4·3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인물로 4·3의 대중화를 주장한다. 출판사 신간사를 운영하는 고이삼씨는 4·3운동 초창기의 비화 등을 털어놨다.

책 말미에는 일본 4·3운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글을 실었다. 문경수의 4·3 시론 '침묵의 벽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길', 일본 4·3추도사업 일람, 제주도 4·3사건 50주년 기념사업 실행위원회의 호소문, 김석범 작가의 문화칼럼 '기억의 부활', 김시종 시인의 4·3시 '4월이, 먼 날이여', 박보씨의 4·3노래 '제주4·3'가사를 소개했다. 진인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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