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질곡의 세월 4·3, 언제까지 ‘사건’에 머물건가

[사설]질곡의 세월 4·3, 언제까지 ‘사건’에 머물건가
  • 입력 : 2017. 03.30(목)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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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중의 비극이다. 적과 아군으로 치열하게 싸운 전쟁도 아닌데 수만명의 양민이 희생됐다. 이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피비린내나는 '인간사냥'이 바로 제주섬에서 벌어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도민이 죽었으면 정확한 사망자의 통계조차 없겠는가.

실제 4·3 당시 희생된 제주도민의 사망자 수는 제각각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 공식 자료에는 1만5000~2만명, 한국 정부는 2만7719명으로 기록돼 있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4·3으로 8만명 정도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1940년대 말 제주도 인구가 30만명으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희생된 도민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끔찍한 일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됐는데도 거의 반세기 가까이 4·3은 입 밖에 뻥긋도 못했다. 4·3을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아예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4·3의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는 것도 아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그렇게 희생됐는데도 정부는 양심의 가책도 없는 모양이다. 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직무마저 애써 외면하기 일쑤다. 단적으로 정부는 4·3 희생자와 유족 지정조차 기약없이 미루는 등 여전히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동안 제주4·3특별법 제정,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 대통령 공식 사과, 국가추념일 지정 등의 성과를 이뤘다. 문제는 여기서 더 이상 진전이 없다. 4·3으로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와 유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는 것이다.

제주4·3은 말 그대로 질곡의 세월을 걸어왔다. 여태 4·3은 어엿한 이름 하나조차 제대로 짓지 못하고 있다. 4·3에 대한 역사적인 조명과 평가를 통해 올바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과거 '공산무장 폭동·반란'으로 규정됐던 4·3이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사건'으로 머물면서 이념논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만큼 정명(正名)을 찾아서 무의미한 이념논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도 초기에는 민란·반란·폭동·내란 등으로 불리다가 근년에 동학혁명·동학농민전쟁으로 정명을 회복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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