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랄 땐 언제고…

[백록담]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랄 땐 언제고…
  • 입력 : 2017. 03.27(월)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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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정책의 핵심은 '일관성'이다.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은 당연히 시장의 혼란을 불러오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요즘 국민들은 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으로 트라우마를 앓을 지경이다.

현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과 금융 규제를 완화, 대출규모를 늘렸다. 주택담보인정비율·총부채상환비율 완화와 재건축 연한 단축, 분양권 전매기간 단축 등 부동산 규제를 대폭 푼 것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재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사상 최초로 1%대의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아파트 분양시장으로 몰리면서 수도권 재건축시장 등 전국을 투기장이나 다름없게 만들었다.

제주 부동산시장 역시 정부정책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었다. 때마침 답답한 도심생활을 접겠다는 이들의 제주 이주열기까지 더해지며 인구 증가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단지형 아파트를 빚을 내서라도 사겠다는 이들이 넘쳐났다. 분양권에 수천만원의 웃돈(프리미엄)이 붙으면서 분양권만 당첨되면 상당한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너도나도 묻지마 청약 대열에 나섰다. 그 결과 올 1월말 기준 도내 가계부채 잔액은 11조5716억원으로 1년 전보다 38.8% 늘었다. 같은기간 전국 가계부채 증가율(11.6%)보다 3.3배 높은 증가율이다.

분양권 가격이 삽시간에 갑절 이상 뛰어오르면서 당첨된 이들은 부자가 된듯한 착각에 빠지는 부의 효과가 생겨났다. 2~3채 이상의 다주택 소유자들은 짭짤한 시세차익을 누렸다. 하지만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이들은 집값이 오르면서 재산세 부담만 커졌고, 무주택자들은 급등한 집값에 내 집 마련의 소박한 꿈을 접어야 하는 양극화 현상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자 부담을 줄여줄 테니 빚내서 집을 사라던 정권 후반기의 정책 기조가 부동산규제 강화로 급선회했다.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의 부작용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작년 11월 서울 강남 등 부동산 과열지역에 대한 분양권 전매를 대폭 강화해 길게는 입주 시점까지 분양권 전매를 못하게 하고, 청약 재당첨도 제한하는 대책을 내놨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강화, 상환능력을 따지고 대출원금을 처음부터 나눠갚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은행권에 이어 올 3월부터는 2금융권으로 확대해 대출의 고삐를 바짝 죄고 나섰다. 은행권 대출을 죄자 저신용·저소득층의 대출수요가 2금융권으로 쏠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는데, 2금융권 대출까지 옥죄면 영세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은 이자가 비싼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게 된다. 획일적인 정부 대책을 우려하는 이유다.

강력한 정부의 대출 규제에 부동산 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이다. 실수요자나 투기수요가 바짝 엎드려 관망세로 돌아섰다. 일각에선 '승승장구하던 주택시장의 봄날은 끝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건물주가 꿈인 나라.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너는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니?" 하는 대화가 오간다는 나라. 결혼을 앞둔 청춘들에게도 비싼 전세금 마련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고, 결혼하고 나면 내 집 마련을 최대의 목표로 삼아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빚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나라. 차기 정부는 지난 정권이 저질러놓은 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국민이 받을 충격이 가장 적은 방법으로 풀어내야 하는 혜안을 요구받고 있다.

<문미숙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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