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1)]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⑪ 아늑한 번식의 섬, 가시억새

[김찬수의 스피시즈 한라산엔시스 탐사(11)]제1부 아득한 기억, 알타이-⑪ 아늑한 번식의 섬, 가시억새
메마른 땅서 염생식물이 체내 물 저장… 염분 걸러주는 역할
  • 입력 : 2017. 03.27(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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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분이 많은 툴강변의 가시억새 군락에는 많은 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툴강변 가시억새 군락 제주 억새밭 연상
다양한 식물 보존지·동물들 서식지 역할


릉산은 꽃들로 넘쳐났다. 릉산이란 우리 탐사대가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툴강변에 있다. 이 강은 툴강(Tuul River) 또는 톨라강이라고 표기했지만 국내에는 톨라강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몽골인들은 uu로 표기한 것을 '오'로 발음하는 것처럼 들린다. 산(Uul)의 경우도 '오~르'로 발음한다. 러시안 알파벳과 영어식 알파벳의 차이 같기도 하다.

서둘러 출발하려는데 아무래도 좀 검토를 하고 지나가야할 것 같은 식물이 있다. 이 툴강변에도 널리 분포하고 있는 가시억새(Achnatherum splendens)다.

초원을 달리다보면 나타났다 사라지고, 사라졌다싶으면 다시 보이는 군락이다. 넓게는 수만 평방미터에서 작으면 서너 포기 정도의 군락도 보인다. 어찌 보면 제주도의 억새밭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강변에서는 갈대밭을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식물체가 억새보다 강하고 영어 일반명이 니들그라스인 점을 고려해 가시억새로 이름 붙였다.

이 식물은 벼과에 속한다. 높이 2m 정도 자라는 다년생으로 잎이 무더기로 모여 난다. 6~7월에 꽃이 피어 8~9월이면 씨앗이 성숙한다. 몽골에서는 러시아와 국경인 흡수굴의 산림타이가, 그레이트 힝안의 산림초원스텝, 몽골 알타이의 산림스텝을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계곡 바닥이나 모래땅, 초원, 물가 같은데 주로 난다.

가시억새군락 속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 (사진 왼쪽부터 차례대로 지채·Triglochin maritimum, 물지채·Triglochin palustris, 해변질경이·Plantago salsa와 제주도 해안가에 자라는 개질경이·Plantago camtschatica).

이 식물은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말, 양, 염소는 먹지 못하지만 소와 낙타는 잘 먹는다. 그래도 혹독한 겨울이나 가뭄으로 풀이 없을 때는 대부분의 가축들이 먹는다고 한다.

대체로 가시억새 군락에는 바람막이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식물들이 살고 물도 어느 정도 보존된다. 여러 가지 식물 부스러기들이 쌓이고 가축의 배설물도 많게 된다. 이것은 결국 식물이 발아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 되고 가축이나 여타의 동물들에게도 숨을 곳 또는 알을 낳거나 기를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 황량한 초원에 아늑한 번식의 섬이 되는 것이다.

이 종은 몽골 초원에만 자라는 건 아니다. 유라시아의 스텝에 널리 분포한다. 흔히 모래땅, 염분이 많은 곳, 물이 자주 흘러드는 곳, 산악에서는 해발 3600m 고지대까지 분포한다. 동쪽으로는 캄차카, 서쪽으로는 서시베리아, 알타이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거의 전지역, 이란, 중가리아, 카자흐스탄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가축이 먹기에는 잎이 너무 억세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도 소는 겨울과 봄에는 초원에 자라는 상태로 혹은 건초 상태로 먹는다. 사료가치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건조에 강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이 충분하지 않은 해에는 매우 중요한 목초자원이 된다. 또한 눈이 많이 쌓여도 노출 되므로 가축에게는 유용하다.

지역 주민들에도 쓸모가 많다. 매트나 울타리를 만들고 땔감으로도 쓴다. 일부 지방에서는 종이의 원료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참고로 러시아식물지에는 이 종의 학명으로 지금은 쓰지 않는 라시아그로스티스 스플렌덴스로 표기하고 있다.

사람에게도 가축에게도 혹한과 가뭄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강수량이 많으면 연간 400㎜, 적으면 100㎜도 채 안 되는 곳이 중앙아시아의 사막과 초원이다. 그런데 가시억새처럼 메마른 땅에서 체내에 물을 머금고 있다가 갈증을 해소해 주는 종들이 있다. 여기에 의존해 자라는 또 다른 염생식물들도 이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염분을 걸러내는 것이다. 소금이 들어 있으면 바다도 사막이다. 목을 축여 주기는커녕 갈증만 부추길 뿐이다. 염생식물들은 이런 쓸모없는 물을 다시 생태계로 순환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염생식물이 없다면 이곳엔 아무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글·사진=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김진, 송관필>



지채와 질경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왕질경이 등 릉산 분포 염생식물
제주도 해안식물과 공통종 많아


가시억새 덤불에서 여러 종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우선 독특한 종으로 지채(Triglochin maritimum)와 물지채(Triglochin palustris)를 들 수 있다. 이 종들은 지채과에 속하는데 전 세계에 25종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채와 물지채 2종이 있다. 그 중 지채는 높이 50㎝까지 자라는 염생식물로 만조 시에는 거의 바닷물에 잠기는 곳에 자란다. 학명 중 'maritimum'은 바닷가에 자란다는 뜻이 들어 있다. 서해안 갯벌에 자라며 제주도에도 자란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표본실에는 애월읍 하귀리에서 채집한 표본이 있다. 물지채는 한반도에서는 북한지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오래된 연못에 자란다. 이 종의 학명 중 'palustris'는 물가에 자란다는 뜻이 있다. 한편 국내외 여러 문헌에 이를 'palustre'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중국에도 이 두 종이 분포하고 있는데 지채는 해발 5200m, 물지채는 해발 4500m까지 분포한다.

질경이도 흥미롭다. 이곳에서 왕질경이(Plantago major), 털질경이(Plantago depressa), 해변질경이(Plantago salsa), 좀질경이(Plantago minuata) 등 4종의 질경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는 질경이, 개질경이를 포함해 4종이 자생하는데 그 중 왕질경이와 털질경이는 이곳 릉산과 공통종이다.

해변질경이는 학명 'salsa'가 염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종을 유럽산 종과 비슷하지만 꽃잎조각 가장자리에 털이 있는 점에서만 다른 아종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해변질경이로 이름 붙인다. 문제는 이 종 역시 해발 3800m까지 분포한다는 점이다. 제주도에는 이와 혈연적으로 가까운 개질경이도 바닷가에 흔히 자라고 있다.

이와 같이 이 강변에서 나도마름아재비, 뿔나문재, 취명아주, 눈양지꽃, 털광대나물, 지채, 물지채, 해변질경이, 털질경이 등을 관찰했다. 이들은 제주도에도 자라는 바로 그 종이거나 아니면 한반도의 어느 해변에도 자라고 있어서 해안식물로 알려진 종들이다. 해안식물 또는 염생식물, 어떻게 보면 고산식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들이다.

그들의 고향은 어디인가? 제주도의 해안에서 분화해서 유라시아 내륙으로 퍼진 것인가 아니면 아시아 내륙에서 제주도로 분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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