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질문에 정보 술술… 의심할 새 없었다

유도질문에 정보 술술… 의심할 새 없었다
[긴급진단]제주 상륙 '대면형 보이스피싱' 피해 속출
3명 억대 피해·2건 미수… 공범 등 오리무중
  • 입력 : 2017. 03.22(수) 17:23
  • 표성준기자 sjpyo@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경찰이 21일 제주공항에서 긴급체포한 보이스피싱 용의자들의 가방에서 현금 다발과 함게 변장용 가발과 모자가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이 소지한 모자가 CCTV에 찍힌 용의자들의 모자와 같은 것을 확인했다. 사진=제주지방경찰청 제공

"인출할 땐 부동산 매수자금이라 말해라" 지시

언론보도 직후 행동책에 "제주 떠라" 용의주도




제주에 처음 상륙한 '대면형 보이스피싱'으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개인정보를 입수한 보이스피싱 일당은 노인들을 상대로 유도질문해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무차별 범행을 이어갔다. 심지어 피해자들이 은행에서 거액을 현금으로 찾으면 의심받을 경우를 대비해 "부동산 매수자금이라고 말하라"는 깨알같은 지시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유도질문에 속수무책

 서귀포시에 사는 A씨(76·여)는 20일 오전 11시쯤 수사기관을 사칭한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누군가 A씨의 새마을금고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하려 하니 빨리 현금으로 찾아서 집 냉장고에 보관하라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현금 4000만원을 인출한 A씨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축협에 있는 돈이 위험하다는 말에 3000만원을 수표로 찾아 다시 냉장고에 보관했다.

 이 와중에 이 남성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라고 지시해 A씨는 다시 은행에 다녀와야 했다. 지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남성은 A씨에게 계좌를 재개설하려면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상세한 설명에 의심할 새 없었던 A씨는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동사무소에 들러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했다. 그리고 다시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했다.

 A씨가 밖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범인 2명이 차례로 A씨의 아파트에 침입해 냉장고 속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유도질문에 넘어가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이미 알려준 뒤였다. 이렇게 제주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20일 하루 3명에 피해액만 1억2400만원에 달했다. 21일 오전과 오후에도 제주시지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이어졌지만 각각 농협직원과 경찰의 발빠른 대응으로 미수에 그쳤다.



# 공범 제주 활동 가능성

 경찰이 제주에서 잇따른 보이스피싱 사건의 용의자인 장모(19)씨와 조모(21)씨를 21일 오후 제주공항에서 긴급 체포해 조사한 결과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가방에선 현금 다발과 함께 변장용 가발까지 발견됐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 내 구직사이트를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아 국제전화를 통해 지시를 받으며 심부름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A씨로부터 가로챈 현금 4000만원과 3000만원을 제주시 노형동 소재 이마트 인근에서 공범에게 전달하고 수고비로 10%를 챙겼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이 진술한 공범의 인상착의가 다른 점으로 미뤄 최소 2명 이상의 공범이 추가로 제주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20일 오전 "아들의 장기를 적출하겠다"고 전화로 협박해 현금 2400만원을 건네받고 달아난 사건도 이마트 인근에서 벌어졌지만 피해자가 진술한 인상착의가 이들이 진술한 공범과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이 연계되고, 아직 제주에 남아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콜센터 지시받으며 전국서 활개

 경찰 조사 결과 체포된 범인들은 각각 단기비자(F2)와 취업비자를 이용해 1월과 2월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보름 전 서울에서 2건의 보이스피싱에 성공한 뒤 제주 범행 전날인 19일 저녁 항공편을 이용해 제주에 잠입했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도 1~2주 전에 제주와 비슷한 사례가 5건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돼 이들의 연루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한 경찰과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긴급 피해경보를 발령하고, 21일 오전 11시 언론에 사건을 공개했다. 이 즈음 장씨와 조씨는 국제전화로 "제주를 뜨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외국에 소재한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국내 보도를 실시간 스크린하며 이들의 범행과 도피 등을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최근 제주도 부동산 경기가 좋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하는 일이 흔해져 거액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며 "전화금융사기 피해를 당하거나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으면 즉시 경찰(112) 및 금융감독원 보이스피싱지킴이(1332)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37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