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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칼럼]엄마의 4·3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7. 03.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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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제주로 이삿짐을 옮겨 최초로 정착한 곳은 서귀포였다. 화장실에 갈 때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앉아서 두 손에 장대를 쥐고 시커먼 돼지와 눈싸움을 했던 외가의 주소지가 서귀포였다. 과감히 타지에서의 새로운 삶을 실행했을 때, 뒤돌아볼 것 없이 제주도로 날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곳이 엄마의 고향, 내 유년시절의 추억이 넘실대는 서귀포였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평화로를 타고 공항을 오가며 서귀포에서 7년을 살았다. 그런데 공항 오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이사를 했다. 주소지는 제주시 조천읍이었다. 조천으로 이사를 가겠다 했을 때 엄마는 반대하셨다. 집 정리를 마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는 겨우겨우 산을 넘어 딸네 집에 오셨다. 서귀포를 떠나기 어려운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컸다. 엄마의 얼굴도 편치는 않아보였다. 차 한 잔을 내드리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네가 하필 이곳에 산다 했을 때 비로소 나도 옛 기억이 났다. 잊고 살았는지, 잊으려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다시는 이 곳에 안 오고 싶었을 뿐이다."

엄마의 유년시절, 대나무밭에 돌을 쌓아 밤마다 숨어 지내던 곳, 날이 밝아 집에 가보면 여지없이 온갖 세간들이 마당에 나뒹굴었던 곳, 애기 업고 밭에 나가 일하고 오던 큰어머니가 총살을 당했던 곳, 아버지가 잡혀 죽을 뻔 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곳, 그 곳이 바로 조천이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이름은 본래 '화자(花子)'였다. 열아홉 되던 해, 엄마의 할아버지께서 지어놓으셨던 한국이름 '일우(一祐)'를 찾게 된 후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일본 이름 '하나코'의 한자식 표기이다.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틈만 나면 일본 가는 배를 타고 사업거리를 도모하셨던 외할머니는 죽공예 장인인 부친을 따라 일본에서 죽공예 가구를 만들고 있던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두 분의 신혼은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엄마를 낳았다. 엄마가 아장아장 걷던 어느 날, 집안에 일본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징용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아내와 딸을 손에서 놓치는 순간, 반드시 살아 서귀포로 가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을 때, 기적처럼 정말 살아 돌아왔다. 서귀포에서 재회한 두 분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섰다. 한라산 중턱 길을 몇 날 며칠 걸어 먼 친척들이 살고 있는 조천에 당도했다. 대나무 숲 아래 아늑한 터에 집을 짓고 다시는 아픔이 없을 것처럼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평화는 곧 산산조각이 났다. 중산간을 뒤흔드는 총소리 때문이었다. 아무데서나,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총알이 날아들었다. 경찰이나 군인 가족만이 유일하게 죽음을 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 징용 당했던 치욕이 몰살의 총구 앞에 선 외할아버지를 살렸다. 엄마는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 꽤 오랫동안 목이 메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조천에 딸이 살아서 엄마는 자주 조천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아예 함덕으로 이사를 오셨다. 4·3의 기억은 다시 꺼내지 않으신다. 대신 함덕 바닷가를 쏘다니다 해거름이 지면 외할머니가 동네방네 소리치며 찾으러 다녔던 추억을 자주 이야기 하신다. 4·3을 겪지도, 본적도 없이 그저 듣기만 한 나이지만 엄마의 어린 시절은 나의 것인 듯 선연하다. 마치 겪은 것처럼, 지금도 눈앞에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잊은 줄 알지만 잊은 것이 아니다. 잊고 싶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4·3이 또 우리 눈앞에 왔다.

<허수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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