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리유적 발견 30년… 현주소와 과제는?

고산리유적 발견 30년… 현주소와 과제는?
발굴성과 이어지나 정비·활용방안 여전히 미흡
  • 입력 : 2017. 02.09(목)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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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부터 고산리유적 주거지와 융기문토기.

박물관 건립·지속적 학술연구 등 필요성 제기


우리나라 최고의 초기신석기 유적인 고산리유적이 올해로 발견된지 30년을 맞이하면서 발굴성과에 대한 지속적인 학술 규명은 물론 보존·정비·활용방안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산리유적은 1987년 마을주민이 타제석창을 제보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이후 수차례 조사를 거쳐 1998년 12월 국가사적 제142호로 지정됐다.

2011년에는 제주시의 의뢰로 (사)제주역사문화진흥원에 의해 종합기본계획이 수립돼 2012년부터 본격적인 학술발굴이 이뤄졌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고재원)의 발굴을 통해 현재까지 수혈주거지 39동과 수혈유구 670기, 야외노지 9기, 구상유구 5기, 소토유구 10기가 조사됐다. 특히 초기신석기시대 정주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수혈주거지 출토양상은 주목된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고산리식토기와 무문양토기 등이 확인됐다. 사질점토에 식물성 유기물을 보강재로 사용한 고산리식토기는 국내에서는 출토된 바 없다. 일본이나 연해주지역의 신석기문화 초창기 유물로 알려져 있다. 석기로는 무경식·유경식화살촉을 비롯 수렵·어로와 관련된 유물, 결상이식 등 장신구류 등이 나왔다. 지금까지 발굴된 토기·석기유물 등이 수천점에 이른다.

그동안 불명확했던 유적의 형성시기도 퍼즐을 맞춰가는 단계다. 유구 내부에서 수습된 목탄시료에 대한 AMS 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7600년경과 4000년경으로 판명됐다. 야외노지의 경우는 7500~7800년의 연대폭을 보인다. 토기는 어떨까. 고산리식토기는 기원전 7500년경, 융기문토기는 기원전 6300년경으로 산출됐다. 석기문화로는 후기구석기 전통의 세석인이나 첨두기 등과 초기신석기의 산물인 양면박리 석촉 등으로 볼때 후기구석기 최말기(12,000B.P.)에서 신석기초기문화로 이행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즉 동아시아 후기구석기에서 초기신석기로의 전환기 문화상을 유추할 수 있는 유적이라는 점에서 국제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발굴성과가 이어지고 있으나 정비·활용방안은 미흡하기만 하다. 제주도는 17억여원을 투입해 지난해 말 안내센터를 준공했다.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데다, 전시실(108㎡)이 너무 협소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고산리유적이 갖는 우리나라 최고의 초기신석기유적으로서의 중요성이나 동아시아속 위상을 감안해 박물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고산리유적 종합기본계획에도 3단계(2017~2019) 사업으로 선사유적 박물관 건립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정비·활용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고산리식토기의 기원과 확산과정에 대한 학술적 연구, 해석차이를 보이는 주거지에 대한 정확한 성격규명 등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와 관련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안내센터의 경우 올해 예산을 투입 운영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활용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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