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시론]보이지 않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한라시론]보이지 않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입력 : 2017. 01.19(목)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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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은 손이다.

그는 낯선 곳에 가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확인한다. 밥을 먹을 때도 의자의 위치를 손으로 만진 뒤 자리에 앉고, 반찬의 위치도 일일이 손을 통해 확인한 뒤 비로소 숟가락을 든다.

그는 틴틴파이브의 메인보컬을 담당하면서 탁월한 가창력과 유머감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개그맨이자 방송인인 이동우씨(45)이다. 그런 그가 마흔살의 나이에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난치병으로 중도시각장애인이 됐다. 눈을 잃은 뒤, 그의 손은 눈을 대신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면 그는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방을 마중한다. 정치인들이 내미는 그런 악수가 아니다. 그 사람의 체온을, 마음의 결을 느끼기 위한 악수이다.

'참 이상하죠. 눈이 안보이면서 사람이 더 잘 보여요.'-이동우

어느 날 그의 고백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지위와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재빨리 눈이 찾아내 알려주었다면, 지금은 상대방의 음성과 말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이 보이던 시절에는 눈으로 보는 현란한 허상에 취했지만, 눈이 보이지 않자 사람과 사물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음을 그는 털어놓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나는데 어떤 사람은 잠시도 같이 앉아있을 수 없을 만큼 악취가 나는 사람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마음의 눈을 번쩍 뜨게 해 준 일이 일어났다. '자신의 망막을 주고 싶다'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그 남자는 근육병으로 온몸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이동우씨에게 자신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눈을 이동우씨에게 주고자했던 것이다.

'제게 남은 유일한 5%인 눈을 이동우씨에게 주면, 그는 100% 완벽해질 수 있으니까요' -임재신

이동우씨가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보게 된 세상, 그리고 둘이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세상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See-Saw)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동우·임재신 두 주인공과 함께 제주도를 무대로 촬영하면서 우리는 내내 울고 웃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동우씨는 재신씨의 손발이 되어 휠체어를 밀어주고, 재신씨는 동우씨의 눈이 되어 길을 인도하니 두 사람은 완전체가 되었다. 마음의 조각까지 맞으니 이보다 완벽할 순 없었다.

제주 여행의 끝에 두 남자가 울먹이며 나누는 대화는 그 어떤 명대사보다 오래도록 마음을 울린다. '우리 살아내자. 안살아져도 우리가 살아내면 되잖아'

최근 드라마 작가인 친구는 세상이 막장이라서 드라마 대본을 몇 달째 쓰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니 픽션이 현실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 곁에는 영화 '시소'의 두 주인공 같은 동화 같은 현실도 있다고…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의 본질은 탐욕이다. 욕망이 부른 동맥경화에 뇌혈관이 터져나가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욕심이다. 그러므로 탐욕의 끝은 상실이다.

그러나 영화 시소의 두 주인공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남에게 주면서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그러므로 나눔의 끝은 결실이다.

부디 이 아름다운 두 남자의 선(善)이 최순실과 같은 세상의 악(惡)에 묻히지 말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는 권선징악의 현실을 지지한다.

<고희영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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