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계기
  • 입력 : 2017. 01.17(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88올림픽이 있던 해 고교 교사였던 집사람이 동료들과 단체로 딴 운전면허증을 집에 가져왔다. 당시에 운전면허증이 없던 나는 깜짝 놀랐을 뿐 아니라 체면도 영 말이 아니었다. 그 후 중앙부처에 근무하고 있던 나도 바쁜 틈을 내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곧 면허를 취득하였다. 솔직히 올림픽 전에만 해도 자가용은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라고 여겼었는데 88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집까지도 그 물결의 흐름을 탔었던 것 같다.

그 후 2002년은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던 해였다. 그때 서귀포시도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개최도시로 확정됐다.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진입시키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은 올림픽을 계기로 강변고속도로와 한강 주변이 개발되고 아파트 등 주거문화가 개선되고 자가용이 서민들까지도 보급되는 마이카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귀포도 월드컵 개최도시라는 명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당시 서귀포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로·상하수도·공원·체육·문화 등 분야별로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회의도 수없이 개최하였다. 목표는 영국·독일·프랑스 등 기존의 월드컵 개최도시만큼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을 거의 완공할 즈음 한일해협시도현지사회의가 열렸다. 경기장 방문 후에 일본지사 중 한 분이 "시장님 월드컵경기장을 짓는데 중앙에서 지원받은 것 말고, 월드컵 개최도시를 핑계로 시장님은 중앙에서 얼마를 뜯어 왔습니까"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 내면의 목표를 들킨 것 같아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걸 보니 행정의 달인 같습니다만 선수끼리는 그런 질문 하는 게 아닙니다"하면서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런 덕분인지 2002년 추경 때 서귀포시의 예산은 인구면에서 4배 많은 제주시 예산을 능가하기도 했다.

2003년 9월 초에 태풍 매미가 제주를 강타했다. 매미는 엄청난 폭우와 바람을 동반하며 천지연폭포 옆 남성리 쪽 절벽이 무너져 내려서 토사가 하천을 덮쳤다. 거의 일주일 동안 태풍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 영상이 클로즈업되며 전 국민들 마음속에 각인이 될 정도였다. 그 후 태풍피해 복구가 시작될 때 서귀포시는 폭포 서쪽편 남성리 사유지가 매입되지 않으면 십년 후에는 천지연폭포가 무너져 내린다고 중앙정부에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토지매입비 수십억원을 확보할 수 있어서 지금은 주변이 주민 모두의 공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이것은 태풍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유익하게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계기를 잘만 활용한다면 지역발전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고 주민들의 의식수준 향상도 가져오게 되며 예산확보도 용이하다.

근래 우리 제주도도 강정해군기지·제2공항 등 굵직한 이슈들이 있다. 불행이든 행운이든 큰 이슈가 있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 지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수없이 고민해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세월호 사건은 있을 수 없는 국가적 불행이었고 그 후의 대응 과정도 너무 실망스럽다.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지만 그것을 계기로 나라가 환골탈태의 시발점으로 삼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겠다는 '국가 대개조'의 후속 조치가 전혀 없었다. 분야별로 적폐개혁의 세부실행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구체적 실행이 뒤따랐다면 달라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볼 수 있음에 아쉬움보다 분한 마음이 앞선다.

<강상주 전 서귀포 시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64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