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진 대권행보… 잠룡, 그들은 누구인가]② 유승민 의원

[빨라진 대권행보… 잠룡, 그들은 누구인가]② 유승민 의원
'정의로운 보수' 꿈꾸며 험지로 나선 4선 정치인
  • 입력 : 2017. 01.11(수) 00:0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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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원내대표시 박 대통령과 '대립각'
진보성향 발언으로 정체성 의심받기도
"중산층·서민·빈곤층 위한 정책 펼칠 것"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세월호 참사 1000일을 하루 앞둔 8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아 교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새누리당을 탈당해 신당 창당에 나선 유승민 의원(58·대구 동구을)은 보수 진영 내에서 매우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가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수행할 당시 국회에서 했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여당이 아닌 야당 의원들로부터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하자'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연설이었다.

당시 그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겠다.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말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에서 무능력함을 보인 정부를 질타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일침을 날렸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단장을 맡는 등 '원조 친박'이었던 유 의원이었기에 정치권에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탄핵 정국에서도 새누리당의 개혁을 요구하며 새로운 개혁 보수 정당 만들기에 앞장선다.



#성장 배경 : 엘리트 코스 걸어온 2세 정치인

대구에서 나고 자란 유 의원은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됐다. 여의도 연구소 소장을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으나, 2005년 10월 사퇴하고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18·19·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그는 새누리당 시절 원내대표 등 요직을 차지하면서 '꽃길'만 걷는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2세 정치인인데다, 보수의 텃밭인 대구에서 줄곧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의 아버지는 대구 중구에서 제13,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유수호 전 의원이다. 유수호 전 의원은 반(反)박정희 대통령 시위를 주도한 학생을 석방시킨 것이 화근이 돼 판사 재임용에 탈락된 일화가 있는 인물이다.



#대권주자 부상 배경 : 내부를 향한 비판, 보수를 깨우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는 그의 공천 여부를 두고 새누리당이 대혼란을 겪었다. 안보를 제외하고는 여러 정책 지향점에서 진보적 색채가 강한 그가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5년 그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수행할 당시인 4월 국회에서 했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여러 현안에 대한 개혁적인 입장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한 그해 6월 모법의 취지를 벗어난 정부 시행령을 사전에 방지해 국회가 입법한 법률의 취지가 국민의 삶에 온전히 반영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유 의원은 대통령과 각을 세운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유 의원을 겨냥해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유 의원은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혔지만, 동시에 할말은 하는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심어줬다. 당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던 그는 2016년 4·13 총선에 공천을 받지 못하는 위기에 놓였고 선거 10여일 전 탈당, 1번이 아닌 5번을 달고 선거에 나섰다. 악조건 속에서 4선에 성공한 그는 대선 주자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게 됐으며 탄핵 정국 속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보수 개혁에 앞장선다.

그는 지난달 21일 탈당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저는 평소 보수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신념을 갖고 정치를 해왔다. 그래서 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얘기해왔다"며 "새누리당 안에서는 보수개혁, 보수혁명을 통한 정치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국민들께서 다시 마음을 둘 수 있고 저희들의 자식들한테도 떳떳할 수 있는 그런 보수를 새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 정책 구상 : 안보는 보수, 경제·복지는 개혁 정책 목표

그는 사드 배치를 앞장서 주장해 왔다. 유 의원은 탈당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보는 확고한 국가안보의 태세를 정통보수의 길을 가고 경제나 노동이나 교육이나 복지나 이런 부분은 기존의 새누리당이 했던 정책이 아니라 고통받는 중산층, 서민, 우리 청년실업자, 빈곤층 이런 분들을 위한 정책, 개혁정책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국정역사교과서에도 반대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개헌에 대해서는 신중하다. 개헌은 필요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차기 정부의 몫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서울=부미현기자



유승민 의원은…


사진=불로·봉무동 경로잔치에서 노인들과 악수하고 있는 유승민 의원(유승민 의원 홈페이지)

유 의원은 1958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현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서 제13·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유수호 전 의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삼덕초등·대륜중·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선임연구위원을 역임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발탁돼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단장을 맡아 정책 공약을 만들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으나 2005년 10월 사퇴하고 대구 동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18·19·20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됐다. 지난해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보수 정당인 '바른정당' 창당에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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