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훈청장의 막말, 뭘 기대할지 개탄스럽다

[사설]보훈청장의 막말, 뭘 기대할지 개탄스럽다
  • 입력 : 2016. 12.08(목)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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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報勳)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써 그들의 공로에 보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이들의 보훈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와 각 지역에 지방청을 둔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 알려진 황용해 제주보훈청장의 발언을 들으면서 실로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황 청장이 '조설대 집의계 애국선구자 경모식'을 추진하는 주민들을 범죄자로 몰아 파문이 일고 있다.

발단은 제주시 오라동 주민들이 '조설대 집의계 애국선구자 경모식'을 지원해 달라고 청장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발생했다. 조설대(朝雪臺)는 조선 말기 면암 최익현의 가르침을 받은 12인의 젊은 유학자들이 1904년 집의계(集義契·의병결사단체)를 결성한 후 이듬해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오라동 망배단에 모여 선언문을 낭독하며 이곳 바위에 '조선(朝鮮)의 수치를 설욕(雪辱)하겠다'는 의미로 '조설대'라는 글을 새겼다. 국가보훈처는 2010년 조설대 각인 돌과 비석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오라동 주민들은 매년 이곳에서 이들을 기리는 경모식을 갖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6일 열린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선화 의원이 황 청장을 상대로 오라동 주민을 박대한 경위를 묻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이 의원이 "경모식 행사에 앞서 청장실을 방문한 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상당한 모욕을 받고 돌아왔다고 하는데, 보훈청장으로서의 자세가 맞느냐"고 따졌다. 황 청장은 "범죄인이 파출소에 왔을 때 파출소장은 어떻게 대하느냐"고 반문하면서 강한 어조로 맞받아치기까지 했단다.

황 청장의 이런 막말을 접하면서 이 나라 고위관료의 보훈의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보훈청장이 일제에 항거한 옛 선조들을 기리는 주민들을 범죄자로 매도하다니 말이 되는가. 보훈청장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데 앞장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되레 재를 뿌리고 나섰다. 이러고도 보훈청장이 맞나 싶다. 애국지사는 훈·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았느냐 안받았느냐의 종이 한장 차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희생한 이들은 모두 애국지사다. 그렇다면 황 청장은 그동안 제주에서 적잖은 기간 복무하며 이들을 선양하기 위해 도대체 뭘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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