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제주로의 초대장, 그 품격을 말하다

[한라칼럼]제주로의 초대장, 그 품격을 말하다
  • 입력 : 2016. 12.06(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가 자랑해왔던 삼무정신은 이제는 언급하기 무안할 정도로 사라진 지 오래다. 거지와 도둑이 없어 집의 대문조차 필요 없었다는 낭만적 제주는 이 땅의 주인이 모두 소박하고 성실히 살아갈 때나 가능했던 얘기다. 현재 제주는 갖가지 이유로 찾아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데, 그중 일부는 땅값 상승률 전국 1위인 이곳을 장터 삼아 몰려든 것이다. 이 여파로 부지런히 일궈져 온 삶의 터전이 점점 줄어들면서 기존 주인들은 허탈감에 빠질 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마저 떠안게 됐다. 또한 이웃·친지들 간에도 보이지 않는 담장이 쌓이고,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뉘고 있는 제주는 사회적 갈등과 반목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정말 안타깝게도 부정적 의미의 삼다도가 제주의 현주소가 돼 버린 느낌이다.

그간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간과해 온 부동산 투기 과열 및 난개발 그리고 양적성장에만 치우친 관광산업의 폐해는, 지금 여기저기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제주가 자본의 논리를 우선시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편한 노다지 땅으로서 스스로를 광고해 온 결과가 아닐까. 이렇게 제주가 탐욕스런 자들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서도 이번에 무섭게 재확인되고 있다.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사태로 제주와의 개별적 연관성이 덜 부각되는 듯하나, 이 사건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국가를 기만하며 각종 이권을 노렸던 장시호에게 제주가 매력적으로 보였던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그녀의 제주 땅은 국정농단 파문으로 발각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농지법 위반을 비껴간 것으로 보인다. 농경지로 등록된 그 땅 위에 정직한 땀 한 방울 쏟은 적 없이, 한탕주의로 어떻게 한 몫 챙길지 고민해 온 그녀의 그간 흔적이 언론보도들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테면, 인접지에 들어설 노인 종합휴양단지 개발 사업에 부합하여 그 토지에 병원을 운영하고자 했던 그녀의 속셈은 실버타운 특수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녀의 계획이 실행으로 옮겨졌다면 그 병원의 성격은 영리병원에 가까웠을 것이다. 여전히 논란거리인 영리병원의 허가 조건이 유독 제주에서는 덜 까다롭다는 점을 충분히 이용했을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그 문제의 땅 근처에 추진하려 했던 문화창조융합벨트의 K팝 상설공연장도 그녀가 노린 이권과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왜냐하면 페이퍼 컴퍼니 광고 회사를 만들었던 그녀의 수상한 행적이 제주에서 추진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사유화하고 분탕질하려던 시도로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탐욕의 질주가 지금처럼 멈춰지지 않았다면, 그녀의 국정농단과 더불어 제주농단도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져만 갔을 텐데! 상상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제주를 탐내온 자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주가 혼저옵서예 두 팔 벌려 이들을 환영해 왔다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함께 혜안을 가지고 또 다른 대도의 등장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순박함을 기저로 한 삼무정신에 더 이상 기대기 어려운 시대의 변화와 현실 속에서는, 손님과 이웃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주지만 도둑에게만큼은 그 울타리를 단단히 쌓아 올리는 분별력 있는 조치가 시급하기만 하다. 경기진작만을 목표로 두고 무분별한 자본유치와 과도한 개발에 앞으로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우리 손으로 작성 중인 제주로의 초대 명단은 그 격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고찬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문학박사>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52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