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시선]트라우마와 치유의 길

[현장시선]트라우마와 치유의 길
  • 입력 : 2016. 12.02(금)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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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폭풍처럼 밀어닥친 충격적인 재앙 앞에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믿음 파괴에 대한 충격, 신뢰감 상실에 대한 배신감, 절망, 두려움, 무기력, 분노 등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은 심한 무력감과 분노로, 절망감으로 우리들을 비탄에 젖어 들게 한다. 날마다 전해지는 소식들은 여지없이 우리들의 소망을 무너뜨리고, 혈압을 높이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끼리끼리 만나면 요즘의 사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들의 감정들을 표현한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상처와 외상들을 치유하려 스스로 노력하고 있구나, 혁신적인 변화에 대한 희망을 꿈꾸고 있구나라는 조짐들을 감지하게 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건강하고 정상적인 집단은 시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민의식이 건강한 그 사회는 희망이 있다.

집단적 상처와 절망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보장하는 대책들이 세워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피해자 치유의 정석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이다. 진정한 사과는 가해자 자신의 행동을 철저히 고백하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밝히고, 이는 자신의 온전한 책임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그 사과행위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인정과 더불어 반드시 행동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고 행동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상처를 공감하고 실천적 반성이 따라야 하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과나 용서구함은 피해자를 또 한 번 죽이는 가해행위가 된다.

상처 공감은 상대방의 상처나 아픔을 느끼고 이해하는 소통 능력이다. 이러한 공감능력이 없게 되면 상처받은 자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에 대한 통찰이 없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피해자를 비난하는 논리를 갖게 된다. 당연히 피해자 입장에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적극적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세월호 참사와 4·3사건 대책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국가적 재난 앞에서 트라우마 치유 시스템을 강구했어야 했는데 이러한 부분에 무관심했다. 아직까지 세월호와 제주 4·3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의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곳곳이 스며들어있는 더러운 찌꺼기들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정리하는 청산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거짓과 탐욕, 권력남용, 약자에 대한 고려와 배려보다는 강자의 논리로 경쟁적 서열을 매기고, 찍어누르기 등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되었던 악질적인 사회풍조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 되었고, 어쩌면 이번 사태들은 당연한 귀결로서 그 정점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역에 걸친 혁신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권력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행동을 성찰하고,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소망하면, 그들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의견을 제시하면 정성 어린 청취를 하고, 가슴이 아프다면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소통의 리더십은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고, 폭력 없는 평화로운 사회 실현의 거름이 될 것이다. <현혜순 (재)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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