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지지리도 복 없는 백성들

[백록담]지지리도 복 없는 백성들
  • 입력 : 2016. 11.07(월) 00:00
  • 김성훈 기자 shki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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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만 해도 벗들끼리 술자리에서 조용히 수군거렸다. 욕을 해도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해댔다. 그러면서 화를 달랬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는 댓글을 통한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흘러나왔다. 목청을 높이기는 했지만 단어 선택과 표현의 수위엔 나름의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인격을 모욕하는 등의 정도가 지나친 표현은 스스로의 자기검열로 걸러내곤 했다. 나라님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2016년 가을, 헌정사상 유례없는 '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한국사회는 분노로 가득차고 있다. 자제가 되지 않고 있다. 표현과 욕설의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그런데 수위가 높아질수록 백성들은 더 통쾌해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꼬집어 인터넷을 달궜던 이른바 '공주전'과 '박공주헌정시'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백성들은 울화통이 조금은 가라앉고 잠시나마 배꼽을 잡았다. 때론 난망한 현 시국과 나라님을 신랄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읽으며 백성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응원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백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중년의 한 여성과 그녀 조력자들의 물욕으로만 끝난 게 아니라 그들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나라의 정책에 개입하는 과정에 나라님의 묵인 또는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치권은 그동안 알면서도 입을 닫았으며 경제계는 또 다른 이익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쥐여주는 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치부가 세상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의 가장 큰 죄악은 한국사회 전반에 악의 손을 뻗어 불신을 조장한 것이다. 정치는 물론이거니와 경제계 곳곳에서 썩은내가 풍기고 있다. 문화 체육계와 심지어 연예계도 썩은내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믿지 못하는 사회, 줄을 서야 하는 사회, 없는 이들이 괄시받는 사회가 한국의 병폐라는 게 새삼스럽진 않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이를 더욱더 고착화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라님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추락시킨 게 가장 큰 죄다. 두 차례 사과성명을 발표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새다. 오히려 기름을 끼얹었다고 여론은 평가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은 물론 세속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되도록 자제하는 종교계까지 시국선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혐오란 게 이 지구촌에서 대한민국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선진국 대부분도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시선이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대선 투표를 하루 앞둔 미국 국민들은 "비호감의 두명 중 한명을 고르려니 머리가 아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이들 국가는 잘 갖춰진 시스템으로 국정이 무리 없이 돌아간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드러난 대한민국의 민낯 중 하나가 '측근정치'다. 갖춰진 '공적 시스템'이 아닌 '자기사람'으로 물밑정치를 하다 보니 어두운 통치가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 비춰지는 한국의 위상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참으로 부끄럽게 돼버렸다.

나라님 복이 지지리도 없다. 역대 어느 나라님도 백성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궁궐을 떠난 이가 없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라님에 대한 지지율은 10% 미만에 그치고 있다는 여론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나라님 지지율 중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다. 그렇다면 나라님을 견제해야 할 국회라고 나을까? 선량들이 모여 있다는 지금의 국회 모습, 국정이 올 스톱된 현 상황을 수습하려 하기보다는 '주판알'을 굴리는 모양새로만 비춰지고 있다. 그러니 답답하고 혈압이 오르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오로지 백성들의 몫으로만 돌아가고 있다.

<김성훈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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