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15)제3부 한라산 훼손지 복구·복원 30년-②훼손지 복구과정과 의미

[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15)제3부 한라산 훼손지 복구·복원 30년-②훼손지 복구과정과 의미
앙카매트 공법·녹화마대 시행착오 속 2006년 사실상 종료
  • 입력 : 2016. 10.17(월) 00:00
  •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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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훼손지 복구사업은 복구 공법, 복구 범위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2006년 사실상 종료됐다. 사진은 장구목 일대 등반로 훼손지 관찰(2003년)강경민기자

1994년 녹화마대 처방 이래 저지대 식생 출현 논란
"과도한 훼손 지역 복구로 보호 동식물 사라질 우려"
남벽등산로 복구 불허 후엔 식생복원 강화 방향으로

한라산에 자연휴식년제가 도입된 이후 30년이 지났다. 한라산은 제 나름의 속도로 푸르름을 되찾고 있다. 제주도는 1994년부터 2015년까지 훼손지 복구에만 158억원을 투입, 16만5000㎡를 복구했다. 그러나 복구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복구공법이 바뀌기도 하고 복구의 범위,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복구과정의 시행착오=1980년대 한라산은 환경적·인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등산로 주변에 흙이 쓸려가고 식생이 파괴되며 나지(나무나 풀이 없이 흙이 그대로 드러난 땅)화 하는 곳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한라산 훼손 문제는 제주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에 1986년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정상 서북벽에 이르는 등산로에 자연휴식년제가 도입됐다.

이와 더불어 훼손지 복구공법 개발에 관한 기초 연구 및 실시 설계(1987, 서울대학교 농대농업개발연구소), 등산로 훼손지 복구 기본 및 실시설계(1991, 서울대환경계획연구소) 등 한라산 보존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연구조사가 실시됐다.

첫 복구작업은 1991년 어리목 등산로에서 이뤄졌다. 어리목 등산로 주변은 7만4000㎡가 훼손돼 전체 훼손면적의 32.8%를 차지했던 곳이다. 이 때 앙카매트 기법이 처음 시도됐다. 토양안정재료인 그물매트를 깔고 벼과식물 '새'를 심는 방식이었다. 이듬해 동일한 방식으로 정상 서북벽 길목인 장구목 일대까지 복구작업이 이뤄졌다.

그러나 앙카매트 공법은 실패했다. 저지대에서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활용되던 방식이었기 때문에 고산지대인 한라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 공법이 시도된 지역들은 10년이 경과한 후에도 식생 피복률이 5% 미만에 머무는 등 식생 회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장구목 등지는 흙이 강수에 쓸려내려가면서 훼손면적이 더 증가하고 말았다.

이에 1994년부터 녹화마대 공법이 긴급처방됐다. 훼손지에 흙이 담긴 녹화마대를 포설하는 방식으로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경사지에서 효과를 나타냈다. 이에 녹화마대 공법은 남벽정상을 시작으로 장구목, 윗세오름, 민오름 등으로 확대 적용됐다. 녹화마대는 초기 헬기로 운반됐지만 막대한 비용이 소요됨에 따라 1997년 설치된 모노레일 통해 운반됐다.

장구목 일대 훼손지 복구(2004년).

▶복구사업 중단 배경=한라산 복구 과정에서 녹화마대로 인해 고지대의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녹화마대를 사용해 복원이 이뤄진 곳에서 저지대 식생인 개민들레 등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녹화마대에 해발 300m이하의 저지대 흙이 담김에 따라 흙속에 담긴 저지대 미생물, 씨앗 등이 함께 옮겨진 것이다.

아울러 인위적으로 훼손되지 않은 곳까지 복구 대상에 포함되면서 논란은 확대됐다. 훼손지 복구는 등산로 주변을 중심으로 탐방객 발에 밟혀 흙이 쓸려나가고, 식생이 파괴된 곳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비·바람 등에 의해 자연적으로 황폐화가 진행된 해발 1500m 이상의 민오름, 붉은오름(윗세오름 상봉), 선작지왓에도 녹화마대가 포설되며 복구원칙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자연적으로 황폐화된 지역을 인위적으로 복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비·바람에 쓸려 자연적으로 드러난 나지는 시로미 등 포복식물의 서식처로 가치가 있다.

훼손지 복구의 전환점이 된 뉴질랜드 생태전문가 몰로이(Les Molly) 박사의 발언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2003년 8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조사 자문을 위해 한라산을 찾은 그는 "사람들이 너무 과도하게 훼손된 지역을 복구해 실제로 보호해야 될 동·식물이 이 지역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고유종이 많은 한라산 정상 부근을 전부 인공적으로 복구한다면 결국 자연성을 상실하게 돼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어리목 등반로 훼손지 복구(2003년) 모습.

2005년 2월 한라산연구소도 '한라산 훼손지 복구에 대한 재고' 보고서를 통해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황폐지가 형성된 곳 중 출입제한 등으로 인위적 요인에 의해 훼손확산 가능성이 없는 곳은 복구대상 지역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라산 훼손지에 대한 복구공사가 더 이상 필요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에 이듬해인 2006년 5월 문화재청은 중앙문화재위원회의 심의결과를 토대로 한라산 남벽 등산로 훼손지 복구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는 한라산 훼손지 복구사업이 사실상 종료됐음을 의미했다.

이후 한라산 훼손지복구는 최소면적에 대해 이뤄졌으며 식생복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별취재팀=강시영 선임기자·강경민·김지은·김희동천·채해원·강경태·강동민기자

생태계 교란 가능성 차단 모니터링 지속
표토 대신 심토 사용해 문제 발생 가능성 최소화


제주도는 1994년부터 2015년까지 훼손지 복구 및 식생복원, 탐방로 보수를 위해 316억원을 투입했다. 사람에 의해 파괴된 식생을 복원하고 인위적인 훼손 가능성을 줄이는 작업이었다.

1단계로 녹화마대를 깔아 토양 기반을 마련하고 2단계로 주변 식물 종자를 채집해 파종하는 방식으로 훼손지 주변 생태계와 같은 환경을 만들었다. 이어 훼손지에서 자라던 자생식물을 증식해 심는 사업이 추진됐다.

훼손지 복구용 흙은 저지대에서 채취됐다. 한라산 내에서 흙을 채취할 경우 또다른 훼손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점차 녹화마대 흙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복구지역 내 식물분포종수는 1997년 76종에서 2002년 90종으로 증가됐다. 주변 식생이 복구지역 내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저지대 흙이 사용됨에 따라 논란을 빚었던 저지대식물 출현은 점차 감소추세다. 저지대 식물이 고지대에 적응하지 못함에 따라 저지대식물 종수는 1997년 21종에서 2002년 19종으로 감소됐고 생육활동도 저조한 상태다. 특히 한라산 백록담 일대의 경우 주름잎 등 8종 전부가 소멸됐다.

하지만 저지대 흙에 저지대 씨앗이나 미생물 등 생태계 교란 가능성이 잠재해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생태계교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표토를 사용하지 않고 심토를 사용해 문제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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