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미국과 영국 그리고 제주도의 중산층

[한라칼럼]미국과 영국 그리고 제주도의 중산층
  • 입력 : 2016. 07.26(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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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마 이후 최대의 제국주의 팽창 국가인 미국과 영국이 오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설마'했지만, 영국은 반(反) 제국주의 형태인 '고립'을 선택했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미국도 겉으로는 '고립'을 자초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도 '설마'의 여지는 크다. 미국과 영국은 자신들이 만들어 온 제국주의 역사의 궤도에서 스스로 이탈하려 하고 있다.

중산층이 무너지자 미국과 영국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미국은 이민과 무역의 장벽을 친 트럼프 씨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무역보다는 이민자들이 핵심이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감행했다. 이민자들을 문제 삼았다. 중산층이 몰락한 이유를 미국과 영국은 이민자들에게서 찾은 것이다. 그들이 어떠한 이유와 명분을 내세우든 희생양 만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은 '톰소여의 모험'과 '걸리버 여행기'의 나라이다. 신세계를 탐험하고, 개척하고, 지배하는 동화와 같은 이 이야기들은 '신자유주의'라는 탐욕으로 재탄생했다. 국가라는 방어벽 대신 시장의 자유로운 활동을 최우선하는 신자유주의는, 톰소여와 걸리버의 후예들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든 새로운 '경제이념'이다. 더 정확하게 신자유주의는 뉴욕과 런던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사람과 자본 그리고 상품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한다는 우리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도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부산물이다.

미국과 영국마저 자기들이 쳐놓은 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려들었다. 국가 부의 총량은 늘었지만, 국민들은 가난해졌다. 신자유주의의 엄호와 지원을 받은 금융자본과 IT 첨단산업들은 자기들 배만 불렸지 일자리를 크게 창출하지도 제대로 분배하지도 않았다. 이들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백인 남성에게도 신자유주의의 혜택은 돌아가지 않았다. 며칠 전 제주에 온 '경제학 강의'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인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가 제조업을 강조한 이유도 일자리와 분배에 있었다. 제조업의 활성화 특히 대기업과 하청기업인 중소기업의 상생이 일자리와 분배에 가장 적절한 경제구조라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고립 정책은, 그들이 중산층에서 탈락했음을 만방에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에게서 세계의 맏형이나 신사의 체면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호혜와 관용의 의젓함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이는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 중산층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우리 제주도는 어떠한가? 제주도의 중산층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간 제주도는 국제자유도시, 특별자치도, 각종 국책사업 등을 추진해왔다. 또 인구 100만의 시대를 계획하고 있다. 수치로 헤아려진 적은 없지만 이 모두가 제주도의 부의 총량을 늘리자는 것임에 틀림없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발상이다. 그 부로 누가 혜택을 누리는지는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졌는지, 부의 분배가 잘 되고 있는지 누구도 묻지 않았고 대답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의 백인 중산층이 몰락했다고 아우성치는 지금, 우리 제주도민의 삶에도 '반(反) 신자유주의'의 발상을 해 보아야 한다. 제주도라고 해서 트럼프 씨 같은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주민이나 이민자들을 경계하며 고립을 선택한 미국과 영국의 몰락해가고 있는 중산층들이 제주에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낙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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