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약초에 대한 또 다른 생각

[한라칼럼] 약초에 대한 또 다른 생각
  • 입력 : 2016. 06.28(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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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 하지가 지나 본격적인 여름에 들기 전에 장마라는 칙칙함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비는 봄비의 연장선상에 있다. 봄은 여름이라는 공간으로 옮겨와 붉고 흰색의 꽃의 향연을 벌였던 작약 밭에는 벌과 나비 그리고 바람과 비와 햇살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어 이제는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땅으로 기울었다.

예전 작약을 재배하던 농부들은 꽃봉오리가 맺히면 봉우리를 모두 잘라버리는 것이 일과였다. 작약은 약간씩 꽃잎을 마려서 차로 달여 먹기는 했지만 주로 뿌리를 약재로 써왔기 때문에 뿌리를 여물게 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십전대보탕의 원료이기도 하고, 여성들의 질병이 좋기로 소문난 작약은 한약 재료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약품원료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붉거나 흰색으로 꽃을 피우는 작약은 처음부터 뿌리를 약재로 쓰였던 것이 아니라 관상용이었다.

중국 삼국시대 외과수술로 명성을 날렸고, 조조와의 악연으로 숨진 명의 화타는 집 뜰에 작약을 심고 초여름 피어나는 꽃을 감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꽃만 보지 말고 뿌리를 살펴보라는 화타부인의 조언에 따라 임상을 통해 작약의 뿌리가 지혈과 진통효과가 있는 좋은 약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작약의 약성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도 중국 안휘성 보저우시 화타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에 초여름에 가보면 작약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에서도 작약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작약의 영어이름은 Peony, 학명은 Paeonia lactiflora이다. 파에온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의사, 이른바 신의다. 지옥의 신 하데스가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맞고 파에온을 찾아갔을 때 파에온이 하데스의 상처를 치료한 것이 바로 작약의 뿌리였다. 이렇듯 작약은 오랜 전부터 동양과 서양에서 약으로 써왔고, 지금도 뿌리를 약재로 쓰거나 꽃과 뿌리에서 약성 물질을 추출해서 약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장황하게 작약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농사꾼이 땀으로 짓은 농사로만 승부를 볼 수 없고 땀이 눈물로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를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름 감기와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는 소엽과 머리를 검게 하고 여성 갱년기를 치료한다는 백수오, 가래를 삭히는데 효과가 있다는 도라지 등을 심어 여름철은 물론이고 늦가을까지 밭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도록 일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빚이요 고통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모자란 머리로 짜낸 전략이 작약을 뿌리만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예전에 관상용으로도 전환하는 것이다.

수줍음이란 꽃말이 말해주듯 초봄 땅을 박차고 붉게 머리를 내밀어 솟아날 때부터 어떤 색깔을 가진 꽃이 필까하는 설렘을 안겨주고 봉오리가 맺히면 아침이슬이 매달린 것처럼 꿀이 솟아나 벌과 나비가 기웃거린다. 빨갛고 하얀 꽃을 피워 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은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함박꽃이라도 불이기도 하겠는가.

제주는 2000종이 넘는 식물이 분포해 약초의 보고라고 하면서도 변변한 약초거리도 없다. 제주의 특색을 찾을 수 없는 도로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동서양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던 이 꽃으로로 도로 옆 거리화단을 조성해 보면 좋지 않을까. 내년에는 작약이 피는 거리를 꿈꾸며 오늘도 땀을 흘리며 작약 밭에 검질이나 메야겠다. <송창우 약초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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