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8)제2부 한라산 인문학-①학술 심포지엄

[제주의 자존, 한라산을 말하다](8)제2부 한라산 인문학-①학술 심포지엄
"한라산 자연·문화·역사 결합 가치 발굴해야"
  • 입력 : 2016. 06.20(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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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학술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최원석 교수, 오상학 교수, 김치완 교수, 박찬모 교수, 고윤정 연구원(왼쪽부터).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심포지엄 한라산 인문학 연구 중요성 강조
"오름까지 연결된 한라산망 통해 한라산 인문학적 가치 재조명 필요"
"탐라십경도 백록담 이야기 등 옛 문헌·유적에 스토리텔링 자원 산재"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은 예부터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인정돼 왔다. 그 속의 식생, 자연환경 등에 대한 연구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반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한라산의 역사, 문화에서 가치를 발견하려는 움직임은 크게 일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한라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라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논하는 학술심포지엄이 지난 17일 제주자연생태체험학습관 시청각실에서 개최됐다. 심포지엄에는 제주대 사범대학 오상학 교수, 경상대 경남문화연구원 최원석 교수, 제주대 철학과 김치완 교수,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박찬모 교수,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고윤정 연구원이 발표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주제발표를 통해 한라산 인문학 연구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최원석 교수는 산천제, 삼신산, 명산·진상 등의 문화역사적 키워드를 바탕으로 지리산과 한라산의 명산문화를 비교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진산에 불과했던 한라산이 삼신산(三神山)으로 인식됨에 따라 국가명산으로서 위상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17일 열린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심포지엄에서는 한라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강경민기자

최 교수는 "조선 중기까지 왕조는 한라산을 '바다 밖' 명산으로 인식했다"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국가사회적으로 영토의식이 격양되고 삼신산(三神山) 의식이 등장함에 따라 한라산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라의 명산이자 삼신산의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명산 한라산에 이야기가 있고 도민들의 생활이 배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한라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오름까지 연결된 한라산망(한라산 네트워크)에 자연·문화·역사를 결합해 한라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재발굴(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한라산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오상학 교수는 "'제주군읍지'의 '제주도' 등을 살펴보면 한라산과 주변에 산재한 오름들이 유기적으로 인식돼 왔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탐라십경도를 살펴보면 신선들이 타고 내려온 하얀 사슴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 등 백록담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다"며 "옛 문헌과 그림, 유적에서 풍수사상, 목마장, 존자암과 수행동, 산천단, 기우단 등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치완 교수는 '한라산 인문학 공간에 대한 철학적 검토'를 주제로 "한라산 인문학 공간, 탐라문화의 공간 형성은 자연경관에서 출발해 그 속에 어울리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 있다"며 "인문학적 공간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공간적 실천을 통해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라산을 제주4·3의 담론공간으로 기억하고 재구축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박찬모 교수는 지리산 인문학을 구축하기 위한 활동을 소개하며 "제주도와 한라산의 지역문화를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한편 산천제·삼신산·여신설화 등 풍부한 문화역사적 키워드를 통해 산악 혹은 명산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리산권문화연구원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한편 동아시아산악문화연구회 활동에 참여한다면 산악문화 연구의 지평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고윤정 연구원은 '한라산 조사연구 현황 및 인문분야 향후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고 연구원은 한라산의 마애명(磨崖銘), 한라산내 촌락 및 생활사 등 현재까지 인문분야와 관련된 조사 실적을 발표하며 "향후 한라산에 분포하는 역사문화유적의 문헌을 근거로 현지 조사를 거쳐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고,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자원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행을 맡은 강만생 (사)제주역사문화진흥원장은 "인문학적 접근이 만시지탄이라는 지적이 와 닿는다. 한라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고려하면서 그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며 심포지엄의 의미를 되새겼다.

강경태·채해원기자



"한라산 인문학, 공동연구 확대하자"

인문 분야 연구 인력 부족 문제
타 기관과 협업·대중화 나서야
한라산신 역사문화 계보 정리를


"한라산의 인문학적 가치는 충분하다. 창세기에 해당하는 천지왕본풀이가 전해지고 있고, 한라산 서쪽 자락에서 태어났다는 한라산신(하로산또) 아홉 형제들 등 이곳에서만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지난 17일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이 개최한 학술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들은 한라산의 인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련 연구는 미흡했다고 지적하며 공동 연구 확대, 연구 결과 대중화 등을 주문했다.

강정효 이사장은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이 펴낸 학술보고서가 대부분 자연과학 분야에 치중돼 있는 점을 거론하며 그 원인으로 인문학 연구 인력 부족, 조직 개편 문제 등을 들었다.

강 이사장은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의 연구 인력만으로 한라산 인문학 전반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연구기관과 연계한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제주 4·3의 경우 4·3유적이라든가 증언이 채록됐지만 한라산 국립공원 안에서의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라며 "4·3연구소와의 공동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라산, 인문학의 가치를 논하다' 학술심포지엄에서 지정 토론자들은 한라산 인문학에 대한 공동 연구 확대와 연구 결과 대중화 필요성을 주문했다. 강경민기자

강 이사장은 "연구원의 조사 보고서는 물론이고 전에 발간됐던 한라산총서 10권도 모두 비매품이어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며 "연구 결과물의 대중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종 연구 결과들이 연구자만을 위한 자료에 멈춰 있기 때문에 설문대할망이 옥황상제의 셋째 딸이라는 왜곡된 정보들이 관광 해설사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찬식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장은 한라산 인문학 연구 과제의 하나로 "한라산신의 역사문화적 계보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 센터장은 "1901년 제주 민란에 대해 연구할 때 재밌는 자료를 봤다. '수신영약'이라고, 김원영 신부가 하논성당을 만들어 포교할 때 강한 미신 신앙을 교리적으로 깨뜨리기 위해 제주에 유행하던 민간 신앙을 전부 소개하고 나열한 내용"이라며 "5세기 초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보이는 포종단 단맥 신앙을 깨뜨리는 광양왕의 존재가 1901년 자료에 재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의 민중저항사 면면에 흐르는 신화적인 요소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이를 추적해서 알아보고 싶은데 신화에 대한 기술서가 많이 나오는 데 비해 설문대할망에서 한라산신, 광양왕, 탐라왕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정리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박 센터장은 이어 설문대할망의 존재, 한라산신과의 연관성 등에 의문을 제기하며 "역사를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문제일 수 있지만 본풀이에는 후대 내용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시대적 흐름을 분명히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광중 제주대 교수는 한라산이 조선 중후기인 17세기 초에 영주산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 등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최원석 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한라산이 17세기 초에 전북 부안에 위치한 변산과 자리다툼을 한 끝에 영주산이 됐다고 했는데 일시적이나마 부안 변산이 왜 한라산을 제치고 영주산의 자리를 획득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삼신산으로서의 자격과 품격을 고려하면 산체의 외형적인 모습과 분위기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며 산체 높이가 비교적 낮은 변산(509m)이 삼신산으로 분류됐던 이유와 배경을 물었다. 최 교수는 이에 "더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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