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응답하라 제주 올레Ⅱ

[한라칼럼]응답하라 제주 올레Ⅱ
  • 입력 : 2016. 05.24(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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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음완보(微吟緩步),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천천히 거닒을 뜻하는 사자성어이다. 제주는 올레길, 둘레길 등 미음완보를 실행할 수 있는 천혜의 도보 여행 코스를 지니고 있다. 천천히 보고 겪고 생각하며 걷는 제주의 도보 여행은 삶의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휴식과 치유를 제공함으로써 제주의 매력을 보다 더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길을 벗어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면도로는 양 옆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차 한 대 지나다니기도 버겁고, 사람은 차량을 피하여 멈춰서거나 피하여야 한다. 웬만한 중심가의 보도는 불법 주차차량과 불법 입간판·풍선형 옥외광고물에 의해 점령되고, 보행 중 교통사고도 빈번하다. 지난해 제주지역에서는 모두 467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93명이 숨지고 7138명이 다쳤고, 이 가운데 보행자 사고는 1080건(사망 40명·부상 1040명)에 달했다.

보행권이란 도로를 보행하는 보행자가 가능한 한 편안하게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보행권은 2012년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법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 법은 제3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국민이 쾌적한 보행환경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진흥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보행권이 존중되는 사회였다. 특히 제주의 골목길인 올레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넓이로 제주인의 삶의 방식이 녹아 있는 현장이고,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도로 개설과 도로 확장으로 제주 구석구석이 연결되면서 자동차가 통행의 주체가 되고, 사람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특히 보도가 없거나 설치하기 어려운 이면도로에서의 보행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최근 제주도는 보행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보도에 볼라드를 설치하고, 보행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교통사고가 빈번한 장소에 간이중앙분리대를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보행환경의 측면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서울의 경우 보행자와 차량의 공존 공간(보차 공존)으로서 보행자 우선도로를 지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보행자 우선도로는 보행자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꼭 필요하지 않은 시설물을 없애고, 보행자와 차량 통행 영역을 물리적으로 구분하는 울타리 등을 최소화하고, 도로가 보도와 차도로 명확히 분리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보행자가 차량소통상황에 따라 도로 폭 전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로이다.

현재 타 지자체에서도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제주는 이미 즐거움과 치유를 주는 걷는 도시로 확고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갈수록 열악해지는 보행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위치는 사상누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보행안전과 보행권에 대한 정책추진 체계를 명확히 하고, 세부 시책 내용을 구체화시켜 제주 특색에 맞는 보행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교통 약자를 배려하고, 도시 미관을 고려하며, 길은 사람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제주의 전통 가치를 담아내는 제주형 보행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제주의 특색을 담은 보행로를 설치하고, 보행로 범위를 넓히거나 재조정하는 등 보행활동을 체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길은 걷는 자의 자유를 향해 열린 공간으로 남아 있어야 하고, 그것이 제주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어야 한다. <문만석 제주미래발전포럼 실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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