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적(敵)들의 시대, 혐오를 먹고 사는 권력

[한라칼럼] 적(敵)들의 시대, 혐오를 먹고 사는 권력
  • 입력 : 2015. 11.03(화)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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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다. 여당의 최고위원의 입에서 '비국민' 소리가 나온다. 여당 대표는 역사학자 90%가 좌파라고 공격한다. 어느 결엔가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와 좌파를 하나로 묶고 상대화한다. '진보-좌파'가 역사교육을 망쳤다거나 '좌편향된 교수들이 문제다'라고 이야기한다. '좌파'는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주홍글씨처럼 통용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좌파'는 박멸의 대상이다. 그들은 여당 의원들을 모아놓고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문학교과서도 '좌편향'되었다며 몰아세운다. 그들에게 '좌파'는 박멸의 대상일 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오염원일 뿐이다.

이러한 인식의 기원은 어디인가. 식민지를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가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 '위생의 정치학'이었다. 한때 조선에 '위생' 열풍이 일었다. 일본제국주의는 일본(문명), 조선(야만)이라고 여기며 조선을 일본이라는 '문명'으로 청소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위생의 정치학'은 마치 문신처럼 조선이라는 신체에 새겨졌다.

해방이 되고 제주 4·3이 일어나자 이러한 '위생의 정치학'은 극에 달한다. 1949년 6월 제주를 찾은 서재권은 제주 4·3의 원인이 "일등국민의 건전한 국민성"을 지니지 못했던 제주사람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민족정기에 입각한 애국적 지도를 받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그는 제주 사람들을 "공산주의 독균"에 감염된 "보균자"들로 보았다. 공산주의라는 병균에 감염된 제주사람들이었기에 제주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상적 청소'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괴질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라는 이름으로 '살처분'했던 영화 '감기'의 한 장면처럼 제주사람들은 그렇게 '사상적 청소'를 당해야 했다. 국가 폭력은 그렇게 정당화되었다. 반공국가를 위협하는 '공산주의'는 섬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를 삼키며 반공국가는 성장했다. 이처럼 '위생의 정치학'은 혐오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라났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더러운 야만의 땅으로 인식했다. 문명을 이식하는 제국주의의 폭력은 그렇게 정당화되었다.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이 말했듯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제국주의는 패배했다. 제주사람들이 공산주의라는 독균에 감염되었다며 '박멸'했던 정권도 결국 국민의 손으로 권좌에서 내려왔다. 반공을 제일의 국시로 내세우며 쿠데타를 합리화했던 군인 출신 대통령도 결국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이들은 혐오를 먹고 자랐다. 전태일이, 광주가 그렇게 죽어갔다.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그렇게 되찾은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깃발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앞에 '한국적'이니 하는 어떤 수식어도 없는 오롯한 민주주의. '민주주의'만의 '민주주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민주주의라는 깃발 아래서 혐오는 자랄 수 없다. 민주주의 적(敵)은 공산주의나 북한이 아니다. 민주주의 적(敵)은 바로 혐오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감염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렇게 '비국민',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혐오야말로 민주주의의 적(敵)이다. 혐오를 먹고 사는 권력은 말할 것도 없다. <김동현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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