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경쟁력 제주가 답이다] (6) 슬로리딩

[느림의 경쟁력 제주가 답이다] (6) 슬로리딩
천천히 읽으며 깊게 생각하는 여백의 시간이 주는 행복
  • 입력 : 2015. 05.07(목) 0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얻는가 하면 책을 꺼내드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뿐인가. 필요에 의해 책을 꺼내들어도 빨리 읽고 책장을 덮으려고 애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슬로푸드' '달팽이 여행' 등 느림과 여유를 찾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느리게 읽기(슬로리딩·slow reading)' 바람이 불고 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과 여백의 시간을 가지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과 여백의 시간을 가지려는 느리게 읽기, 즉 '슬로리딩'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제주대학교 제공



▶왜 '슬로리딩'인가='슬로 리딩'을 주창한 하시모토 다케시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배움'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주고자 '은수저 슬로 리딩법'을 고안해 냈다. "배우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단순히 "'논다'라는 기분으로 배우면 되지 않겠니?"라고 대답하기보다는 교사 스스로 아이들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게 교재를 개발하고 교안을 마련하고자 한 데서 슬로 리딩법은 시작됐다.

책을 시각적으로만 기억한다면 평소 관심있거나 익숙한 말만 쉽게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작자가 말하고자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자신을 비춰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독서법이 지속된다면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닫힌 사고만 반복되어 시야가 넓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편협해질 것이다. 독서는 '작자'라는 이름의 타자와 마주함으로써 우리가 보다 열린 인간이 되게 하는 계기를 부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충분히 사고를 거듭하면서 '슬로리딩'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뷔작 '일식'으로 1999년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한 권의 책을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슬로 리딩은 어찌보면 요즘 세태와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는 빨리 읽는 속독이 아니라 느리게 음미하며 읽는 방법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독서법이라며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거쳐 작가가 됐다고 소개한다.

속독 후 남는 건 ‘읽었다’는 사실 뿐
15·16일 제주대에서 ‘불금야독’ 행사
하시모토 다케시 ‘은수저 리딩법’ 고안


▶'슬로리딩'에 관심 많아져=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이런 취지를 살린 모임도 늘고 있다.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차례 모여 한 시간 동안 책을 읽고 헤어진다. 모임을 통한 사교활동도, 책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토론하는 일도 없다. 그저 조용히 책을 읽다가는 게 전부. 유일한 철칙은 모임 전에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전원을 끄는 것이다. 독서에 완전히 몰입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남양주시에서는 '책 읽는 시민, 책 읽는 도시'조성을 위해 '슬로리딩! 책 읽는 남양주!'를 슬로건으로 독서와 관련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슬로리딩'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 모든 디지털 정보기기와 차단된 환경에서 오로지 책을 읽는 것에만 집중하는 독서운동으로, 읽을 거리와 차를 가지고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는 독서 활동이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아직 '슬로리딩'에 대한 움직임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느림'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슬로리딩 운동'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반가운 것은 '슬로리딩'정신을 찾을 수 있는 인문학 강좌가 잇달아 마련되고 있다.

제주대학교 중앙도서관은 오는 15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30분까지 제1회 밤샘 책읽기 행사를 진행한다.



▶1박2일동안 도서관에서 느리게 읽기=제주대학교 도서관에서는 '불타는 금요일' 저녁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밤새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행사가 제주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다. 제주대 중앙도서관은 오는 15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인 16일 오전 7시 30분까지 제1회 밤샘 책읽기 행사를 진행한다. '불금야독: 도서관에서 무박 2일'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서는 신청도서나 도서관 추천도서를 읽고 다른 참가자들과 소통하는 독서프로그램을 비롯해 특강, 도서관 스탬프 투어, 오엑스 퀴즈, 행운권 추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행사에 참여한 뒤 서평과 후기를 제출하면 우수작에 대해 시상도 한다.

이번 행사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책 읽는 풍토를 조성하고 다른 참가자와 함께 교류하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등 대학생활의 낭만과 추억을 새겨주기 위해 마련됐다. 김흥수 도서관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이 역동적인 도서관의 모습, 변화된 도서관의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권의 책을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슬로리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도 남양주시가 책읽는 도시 조성을 위해 독서와 관련된 사업을 진행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제주에서는 아직 슬로리딩에 대한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은게 사실이다. 아래 사진은 슬로리딩을 소개하고 있는 책자.

▶책읽기 운동 벌이는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서귀포시에서는 시민들이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이경주 서귀포시민의 책읽기 위원장은 "요즘은 지식정보시대를 거쳐 문화의 시대다. 문화란 인류의 생활양식으로 그 시대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총체가 곧 문화라는 말이다. 그 문화의 중심엔 바로 책이 존재한다. 독서는 지력의 원천으로서 창의성이나 상상력, 정서적 즐거움 뿐만 아니라 강력한 평생교육 수단임과 동시에 아울러 평생학습으로서의 자기계발 등 독서의 힘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신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며 문화를 향유하는 삶일 것이다.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 이를 일깨워주는 것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강력하고 손쉬운 수단은 바로 책이 아닌가.

이 위원장은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독서에도 왕도가 없지만 '슬로리딩'은 깊게 천천히 음미하듯 책을 읽음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품게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으면 각기 다른 책 열 권, 스무 권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양(量)'의 독서를 끝내야 한다. 속독 후에 남는 건 단순히 읽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런 독서는 무의미하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99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