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 왕벚나무 출생의 비밀

[목요담론] 왕벚나무 출생의 비밀
  • 입력 : 2015. 04.16(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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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나무는 어디서 왔을까? 왕벚나무에 대한 최초의 공식 기록은 1900년 일본원예잡지 45호의 우에노공원 벚꽃에 대한 기사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해 정식 학명을 달고 학계에 등장하게 된다. 논쟁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 학명을 지을 때는 기준이 되는 표본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오오시마 지방에 자란다는 정도로 두루뭉수리 기록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엉뚱하게도 제주도에서 터졌다. 한라산에서 왕벚나무가 채집된 것이다. 1908년 4월15일, 당시 선교사로 활동하던 프랑스인에 의해서였다. 이 표본은 독일 베를린대학의 교수가 감정했다. 이 아름다운 벚꽃이 오오시마 지방에 자생하는 줄만 알았던 일본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제주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왕벚나무가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 다소간 의문이 있더라도.

제주도에 정말 왕벚나무 자생지가 있을까?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과 표본들을 검토하면서 점점 제주도가 유일한 자생지라는 결론으로 굳어져갔다. 그런데 갑자기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1916년 당시 일본의 벚꽃을 연구하던 어네스트 윌슨이라는 학자가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왜벚나무의 잡종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왕벚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였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언급했다. 왕벚나무를 일본에서는 소메이요시노사쿠라라고 부른다. 이 명칭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이 '메이지시대 초기에 도쿄에 있는 소메이의 묘목상에서 요시노사쿠라라는 명칭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벚나무'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메이지 초기에는 교통이 불편해서 요시노산의 벚나무의 아름다움을 듣기만 하였고 실제 요시노산에 가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동경에 있으면서 요시노의 벚나무를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요시노사쿠라라고 이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면 이 묘목상에 물어 본다면 왕벚나무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닌가.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여러 연구자가 소메이요시노(왕벚나무)의 유래를 알기 위해 소메이의 화원(묘목상)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이 벚나무가 세상에 나온 지 오랜 세월이 흘렀고 이것을 판매하기 시작한 화원도 이미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모두 타계해 버려 이것을 알아 낼 수가 없었다'라는 기록들만이 남게 되었다.

왕벚나무 자생지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윌슨의 추정, 쇼메이의 묘목상의 여러 정황, 이들을 입증하기 위한 길고 긴 교배실험들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주장들을 입증하기 위해 첨단기법들도 동원되고 있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게 없다.

왕벚나무가 제주도에 자생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입장이 있다. 그 근거는 불과 몇 그루가 도로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 한라산에는 수많은 개체들이 발견되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조사할 의미마저 상실해 가고 있을 정도다. 어린나무에서 200년생으로 추정되는 노령목까지 있다. 한라산 사면의 방위에 관계없이 해발 400m에서 900m까지 천연림에 분포한다. 교잡종이라는 근거도 희박하다.

왕벚나무 출생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렇게 애를 써도 이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은 지금 한라산에 자라고 있는 왕벚나무들 때문이다. 한라산에 이 나무들이 자라는 한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유일한 자생지라는 지위는 굳건하다. <김찬수 국림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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