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9)원도심 재생 어떻게(중)

[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9)원도심 재생 어떻게(중)
  • 입력 : 2014. 11.25(화) 00: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으로 제주시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생태하천인 산지천의 얼굴을 바꾸기 위한 굴삭기 소리가 요란하다. 사진=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탐라문화광장'에 도시재생의 미래를 묻는다
산지천변에 외딴 섬 같은 광장·공원·카페거리 등 조성
제주시 원도심 사람들 기억 앗아간 도시재생 방식 논란


50년간 산지천변에 살았다는 주민은 하천 바닥을 파헤치는 굴삭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오락가락 비날씨였지만 공사는 계속됐다. 내년 이맘때쯤엔 동네의 얼굴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생태하천을 복원한다며 콘크리트를 걷어냈던 산지천이다. 이번에 또다시 원도심 볼거리를 만든다는 이유로 제주시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산지천에 중장비가 내려앉았다.

제주도가 구상한 도시재생의 결과물은 '탐라문화광장'이었다. '국내외 관광객과 크루즈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세계적 관광 명소 개발'을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새로운 관광 인프라를 조성한다는 사업을 두고 기대보다 우려가 많다. 원도심이 품은 자원을 발굴하고 윤기를 내기보다는 새 건물을 지어 도시의 랜드마크를 빚어내는 식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탐라문화광장 공사가 추진되면서 제주항을 곁에 둔 제주도의 관문으로 숱한 이야기를 이어온 산지천의 옛 길, 오래된 건축물이 사라졌다. 그 바람에 일제때 지어진 고씨 가옥도 허물어질 뻔했다. 고씨 가옥은 지난 10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제주시 칠성로 등 원도심 일대에서 '현장 도지사실'을 운영한 이후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보존하기로 결정됐다. 고씨 가옥 철거를 둘러싼 논란은 탐라문화광장으로 대표되는 제주시의 원도심 재생방식에 의문을 던진 계기였다.

'탐라문화광장 조성계획도' 안내판 너머로 철거 위기를 넘기고 보존이 결정된 고씨 가옥이 보인다.

▶"도시는 수많은 길로 이뤄진 생명체"=탐라문화광장이 조성되는 지역은 제주시 일도1동과 건입동 일원이다. 동문로터리에서 동진교에 이르는 길이 350m 구간 4만6775㎡ 대지 위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가 탐라문화광장에 투입하는 예산은 515억원이 넘는다. 건축물 등에 대한 보상비가 166억원을 차지한다. 11월 현재 전체 83필지 중에서 92.4%에 대해 보상을 마쳤다. 제주항을 오가던 사람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놨던 몇몇 여관들이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었는데 그곳 역시 얼마전에 보상이 마무리됐다. 고씨 가옥을 제외하면 산지천과 함께 흘러왔던 공간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사회학자 정수복은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2010)이란 책에서 "도시는 얼핏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처럼 보이지만 실핏줄에 피가 흐르듯 막히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 수많은 길로 이루어진 하나의 생명체다. 피가 흐르지 않으면 생명이 끝나듯이 길이 막히는 곳에서 도시는 끝난다"고 했다. 그의 말을 곱씹어본다면, 탐라문화광장은 생명체를 이루던 수많은 길을 시멘트로 덮어버리고 애써 박제화된 풍경을 그려내는 일을 하고 있다. 산지천 주변에 흩어져있던 여관, 어구점, 미용실, 동네 슈퍼 등을 허물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의 형체를 지워버렸지 않은가.

탐라문화광장 조감도. 제주도는 '낡고 허름한' 장소를 걷어내고 '새롭고 쾌적한' 거리로 변모하는 탐라문화광장을 통해 원도심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오래된 원도심 살리겠다며 역사성 훼손=산지천 사람들의 기억을 앗아간 자리엔 공원, 광장, 카페마을, 세계음식 테마거리 등이 들어선다. 산지천 분수와 레이저쇼, 경관 조명 작업도 덧붙여진다. 2011년 9월에 나온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최종 보고서대로라면 제주시에 처음 생겨나는 광장은 원도심에 인파를 모으는 역할을 맡는다. 민간 투자 사업으로 추진되는 카페마을은 해당 구역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세계음식테마거리는 한국·중국·일본과 유럽의 대표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거리로 방문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게 된다. 이를 통해 탐라문화광장이 꿈꾸는 미래는 제주지역 야간관광의 중심지로 원도심에 국제적인 관광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일로 모아진다.

이같은 사업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치중한 도시재생이라는 점에서 예전의 도시 개발을 떠올리게 만든다. 원도심의 기억이 쌓여있는 여러 집들과 거리, 사람들이 이미 역사문화적 자산임에도 그걸 단숨에 밀어내고 새삼스럽게 역사문화관광 인프라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만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원도심 곳곳의 장소도 역사문화유산이라는 점을 놓친 결과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심을 살리겠다면서 그만큼 나이를 먹은 장소를 눈앞에서 쓸어내고 있다.

▶낡은 건물 부수는 일이 개선일까=2015년 12월이면 탐라문화광장 공사가 마무리된다. 보상 문제로 맘고생을 겪은 산지천 사람들은 어느날 난데없이 탐라문화광장 조성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누구는 보상금을 받아 목좋은 곳에 새롭게 가게를 차렸다고 하지만 수십년 살던 땅에서 쫓겨나는 심정은 너나없이 같다.

21세기형 탐라문화광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도시재생의 방법은 20세기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거기에 높다란 빌딩을 세우거나 좁은 길을 넓혀 큼지막한 도로를 내는 형국이다. 곧게 뻗어 새로난 길은 상가로 이어지는 지름길로 유용할 뿐 그 도시의 숨결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린다.

'40~70년 이상된 낡은 건물을 도시환경 개선을 통해 쾌적한 명소로 재탄생'시킨 결과 세계음식의 거리, 카페 마을, 광장 같은 곳이 꾸며졌다고 하자. 안으로는 서울·부산·대구 등에서, 밖으로는 도쿄나 베이징에서 볼 수 있는 그같은 거리 풍경을 굳이 제주까지 와서 찾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제주시 원도심이 나홀로 간직한 빛깔이 없을 때 관광의 매력 또한 사그러든다.

더욱이 탐라문화광장은 원도심 도보 관광 코스로 활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덧칠해진 탐라문화광장이라는 '외딴 섬'에 발디딘 이방인의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외국의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곳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은 제주도가 탐라문화광장을 통해 가닿으려는 목적지와도 멀어 보인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07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