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6)대구 도시재생

[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6)대구 도시재생
  • 입력 : 2014. 11.04(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이상화 시인 고택을 찾은 관람객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허름하고 누추한 '근대골목' 도시 살릴 자원으로
중구 원도심 5개 골목투어 코스 지난해 20만명 방문
전쟁 포화 비켜간 곳에 깃든 사연들 꿰어 스토리텔링

문화마을협동조합 김성훈 이사장이 안내한 곳은 대구시 중구 북성로 인근에 자리잡은 한옥이었다. 50여년간 생명을 이어온 기와집은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시절 사람의 온기가 머물던 방은 도시를 찾는 손님을 맞이할 객실로 바뀌는 중이고 마당엔 파란 하늘을 담은 듯한 풀장이 갖춰졌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공사 현장이었다. 낡은 건물을 헐어내는 대신 그 안에 깃들었던 이야기를 붙잡으며 경관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대구 중구 생애사 열전.

지금 대구는 한옥 등 근대건축물에 체온을 불어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1906년 대구읍성의 북쪽 성곽을 헐고 만들어낸 신작로에서 유래한 북성로엔 일제강점기의 시대성을 반영하는 건축물이 '북성로 공구박물관'으로 변했다. 몇 년 동안 문을 닫았던 철물점 삼덕상회는 건물 원형을 그대로 살린 '카페 삼덕상회'로 살아났다. 중구 향촌동 옛 상업은행 건물엔 향촌문화관과 대구문학관이 들어섰다.

북성로에서 시작된 대구시 원도심 중구의 시간 여행은 근대문화골목, 방천시장 옆 김광석길 등으로 이어졌다. 얼마전 까지도 그 명칭이 낯설었던 '대구 근대골목'은 이제 대구라는 도시를 먹여살릴 새로운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그 동네를 지켜온 건축물의 숨결을 보듬어내는 도시재생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듯 싶다.

방천시장 옆 좁다란 골목의 김광석길은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어르신 생애사 열전 100선 작업=400여년 영남의 중심지로 성장해온 대구는 한국전쟁의 포화가 비켜간 지역이다. 그 덕에 적지 않은 근대 문화유산이 살아남았다. 전국 각지 피난민이 모여들며 격동의 근현대사에 얽힌 숱한 사연이 더해졌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도 피난지 대구에서 유년을 보낸 작가의 추억이 물들어 있는 소설이다.

이같은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홀로 있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자원들이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제주의 신제주와 같은 외곽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원도심은 공동화의 길을 걸었다. 동성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골목길을 찾는 발길이 끊겼다.

'대구 근대골목'은 수 년에 걸친 사업 성과를 하나둘 쌓아가며 그 얼굴을 드러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 고택, 3·1만세운동길, 전국 약재 상인들이 모여들던 350여년 역사의 약령시, 계산성당과 같은 역사문화자원이 점이라면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 근대골목 공공디자인 개선, 종로·진골목가로환경개선, 경상감영공원 주변 전통 문화거리 조성, 봉산문화거리디자인개선사업은 선이 됐다. 선으로 점을 이으니 근대골목이라는 공간이 탄생했다. 역사와 문화를 품은 그 곳에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배어나왔다. 중구에서 터잡고 살아온 나이든 어른들의 생애를 기록하는 '대구 중구 생애사 열전'도 100선을 목표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국채보상운동을 제안한 대구시 중구 서상돈 고택을 찾은 관람객들

▶"골목길 들어서면 모두가 주연배우"=대구 중구에서 조성한 골목 투어 정규 코스는 경상감영달성길, 근대문화골목, 패션한방길, 삼덕봉산문화길, 남산100년향수길 등 5개에 이른다. 이 길을 모두 합치면 15㎞쯤 된다. 경상감영달성길에선 대구의 발전이 시작된 경상감영과 일제강점기때 번성했던 북성로 거리를 걸어볼 수 있다.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의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청라언덕,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서상돈 고택, 진골목 등이 펼쳐지는 근대문화골목엔 대구 근대 100여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패션한방길은 원도심 중심지 동성로가 포함됐고 삼덕봉산문화길은 '서른 즈음에'를 부른 대구 출신 가수 김광석길을 뒀다. 남산100년향수길에 나서면 대구 천주교 역사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이들 5개 코스에 발디딘 방문객은 20만명이 넘는다. 중구 골목이 뜨면서 해설사 수요가 늘었고 관광상품 개발과 판매를 위한 젊은 1인 창업가,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이 생겨났다. 최근 열린 대구관광상품공모전에선 김광석길 관광상품이 대상에 선정됐고 근대골목 테마 상품이 우수상에 뽑혔다.

골목문화해설사 양성을 추진하는 등 대구 골목투어 성공스토리를 일구며 '지방행정의 달인'에 오른 중구청 관광개발과 오성희 주무관은 "골목을 뚜벅뚜벅 걷다보면 정신적·육체적 만족을 한꺼번에 느낀다"며 "역사의 현장이 있고 스토리가 있는 골목은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주연배우 역할을 선사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3·1만세운동길.

일제강점기 건축물에 조성된 북성로 공구박물관.

▶젊은이들의 발길 닿는 원도심=골목이 북적이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걷다 쉬다, 걷다 쉬다하며 골목이 지닌 본래의 매력을 찾아야 한다는 김성훈 문화협동조합 이사장도 그런 경우다.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대구시 원도심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풍경에 눈길을 주고 출신지인 북성로 일대를 중심으로 젊은 축제인 물총축제, 벼룩시장, 게스트하우스 운영, 아카이브 구축 등 협동조합 회원들과 더불어 알찬 콘텐츠를 채워가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프렌즈' 등 SNS 모임을 활용해 근대골목 사진 콘테스트 등을 열어온 이승로 수성고량주 대표이사는 "몇년 새 골목투어에 방문객이 밀려들면서 대구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며 "대구가 가진 이같은 자원을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먹고 살길을 찾자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 골목길에 햇살드는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방천시장에선 입주예술가와 지역상인 등이 '김광석길다시그리기운영위원회'를 꾸려 어느 순간 먹거리 골목으로 변한 그 길에 다시 예술의 향기를 머물게 하자는 궁리를 이어가고 있다. 골목은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간다.

대구=진선희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91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