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5)원도심 사람들(하)

[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5)원도심 사람들(하)
  • 입력 : 2014. 10.28(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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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칠성로 샛목골. 개발 바람 등으로 원도심이 자꾸만 형체를 잃어가고 있지만 1971년 문을 연 대동호텔 등 오래된 숙박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지친 몸 뉘였던 여관방에 예술의 향기 흐르네
관광개발 바람타고 칠성로 샛목골 등에 숙박업소 밀집
도시의 오랜 역사·문화 배경 원도심 여행자 쉼터 속속


올해 나이 여든 넷의 장정순 할머니는 3년전에야 여관일에서 손을 뗐다. 남편의 성씨를 딴 옥림여관. 그 이름처럼 베란다엔 숲 속처럼 초록 식물들이 자랐다. 1971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 각지에서 제주에 발디딘 사람들에게 안온한 쉼터를 제공했던 곳이다. 장 할머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늦은 나이까지 5층짜리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손님을 맞았다.

1969년 제주시 칠성로의 모습. 몇 군데 여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가 서재철의 '제주의 옛 이야기'에 실린 사진이다.

그땐 왜 그리 태풍이 잦았을까. 장 할머니는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세찬 바람을 탄 빗방울이 여관 건물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탓에 마른 수건으로 쉴 새 없이 닦아내야 했던 기억이 잊히질 않는다고 했다.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칠성로 옛 제일극장으로 이어지는 샛목골(샛물골)엔 옥림여관 등 숙박업소들이 많았다. 반도여관, 남창여인숙, 한일여관, 세림장 같은 곳은 이제 사라졌지만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업소들이 있다. 대를 이어 여관을 꾸려가는 곳도 보인다.

숙박시설은 그 도시의 첫 인상을 결정짓는 곳 중 하나다. 어느 시절 이 섬에서 가장 번화했던 지역에 들어선 제주시 원도심의 여관들은 그동안 제주의 얼굴이 되어 '제주 관광'의 한 페이지를 써왔다. 이즈음엔 대동호텔에서 비앤비판 게스트하우스까지 원도심이 간직한 이야기를 경쟁력있는 자원으로 키워가려 한다.

비앤비판 게스트하우스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사진이 숙소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음식업에서 숙박업으로 바꾼 사연=관덕로 15길 샛목골의 대동호텔에서 만난 칠순이 넘은 강정자 대표. 그가 처음부터 숙박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옛 제일극장 인근에서 냉면 음식점을 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밀려드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쉴 틈이 없었을 정도로 문전성시였다.

제주 관광개발이 업종을 바꾸게 만들었다. 제주4·3과 6·25전쟁이 끝난 이후 평화의 기운이 찾아들자 제주도는 차츰 관광산업에 눈을 돌린다. 1963년 제주와 부산을 잇는 정기여객선 도라지호 취항, 제주도를 1일 생활권으로 바꿔놓은 제주-서귀포간 제1횡단도로개통, 제주관광호텔(하니관광호텔) 개관을 통해 제주관광 기반을 닦았고 1970년대에 이르면 국제관광지로 변화를 모색한다. 1971년 정부에 의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은 60년대부터 시작된 제주개발 구상을 구체화해 제주관광의 장기비전을 담아냈다.

1971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외국인 1만3820명 등 30만8000명에 달한다. 관광객이 늘면서 성수기만 되면 객실난과 교통난을 겪었다. 이 해에 대동호텔의 전신인 대동여관이 객실 9개를 갖추고 개업했다. 같은 해에 옥림여관도 문을 열었다. 옥림여관은 일찍이 방 안에 화장실이 딸린 시설을 구비해 인기를 모았다.

대동호텔 갤러리인 비아아트 내부.

▶"칠성통 키드들이여 모여라"=수학여행단이 몰려들 무렵이면 샛목골만이 아니라 인근 업소까지 물색해야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토산품점이 여럿 있었고 미장원, 목욕탕 같은 곳도 자리잡았다. 1990년대 골목길을 확장하기 전에는 어깨를 부딪히며 다닐 만큼 북적였던 동네다.

세월을 이어오는 동안 골목 안 여관들은 조금씩 변했다. 옥림여관은 초록나무 그림으로 건물을 뒤덮은 '더 포레스트 게스트하우스'로 새옷을 갈아입었다. 대동여관은 34개 객실을 둔 대동호텔로 성장했고 지금도 수십 년된 단골이 찾는다. 호텔 한켠엔 갤러리 비아아트와 아트숍 비아오브제가 들어섰다. 경도여관 자리엔 옐로우 게스트하우스가 그 이름처럼 노란빛깔 외양을 하고 서있다. 대동여관과 옥림여관 단체 관광객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던 유미식당은 동성장으로 바뀌었다. 유성장은 목욕탕까지 갖췄던 업소지만 근래엔 숙박만 가능하다.

2014년 10월 현재 제주시 동지역 숙박업소는 470개가 넘는다. 일도1동, 삼도2동, 건입동 등 원도심권엔 최근 몇 년동안 젊은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늘고 있다. 가정집을 고쳐 만든 비앤비판 게스트하우스도 그런 곳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업소로 "원도심이야말로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보석"이라고 말하는 신창범씨가 고향으로 돌아와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신 대표는 얼마전부터 SNS를 활용한 '모여라 칠성통 키드', '지꺼진 소셜 다이닝' 등 어릴 적 자신이 뛰놀던 제주시 원도심에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일에 나서고 있다. 제주다운 먹거리가 빠진 원도심에 새로운 이야길 더하기 위한 방법도 궁리중이다.

▶6개 여관에서 제주아트페어 첫 선=대동호텔 비아아트는 글로컬문화콘텐츠연구소와 함께 다음달 7일부터 이꼬이앤스테이를 포함 샛목골 일대 여관을 장소 삼아 제주아트페어 '3일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여관마다 형편이 되는 대로 참여했다. 3개월 가깝게 이어지는 제주아트페어의 서막을 여는 프로그램으로 3일 동안 여관 6군데의 객실이나 로비에 그림이 걸리고 작품이 설치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들과 제주로 이사한 예술가들이 '여관 아트페어'를 통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다. 추자도에서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에서 제주섬을 구경하러 왔다가 잠시 몸을 뉘였던 여관방들이 이번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미술 작품들로 채워진다.

제주아트페어는 애써 건물을 뜯어 고치거나 단장하지 않고 원도심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살아온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원도심이 이어온 생명력을 도시 재생의 새로운 에너지로 바꿔갈 수 있는 사례인 셈이다. 주최측은 다음 기회엔 샛목골에 있는 여관만이 아니라 금은방, 옷가게 등 여러 상가의 특성과 어울린 미술품을 전시 판매할 수 있는 아트페어로 치르겠다는 계획을 들려줬다.

<일삼공일프렌즈 제작>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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