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굿을가다](4)신흥리 해신제

[제주당굿을가다](4)신흥리 해신제
"바다가 터전…신들에게 정성은 당연"
  • 입력 : 2014. 08.21(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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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읍 신흥리 해신제를 지내기에 앞서 소미 역할을 맡은 심방이 기메를 내걸고 있다. 김명선기자

어촌계원 50여명중 절반 가량인 해녀들이 주도
정월 초아흐레 볼래낭 할망당서 신과세제 겸해

제주시에서 동쪽해안으로 14㎞를 달리면 바다 한가운데 현무암 자연석을 원통형으로 쌓아올린 방사탑(제주도 민속자료 제8-10호)을 볼 수 있는 마을인 조천읍 신흥리.

물가를 따라 좁고 길게 형성되어 있는 마을은 예부터 '왜포', '내포(內浦)', '고포'라 불리던 곳이다. 주변의 다른 마을에서 분리되어 1914년쯤에 형성되었기에 신흥리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여느 어촌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가꾸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해마다 정초에 남성들은 포제, 여성들은 당굿, 어촌계원들은 해신제를 각각 지내면서 가족과 주민의 안녕, 계원들의 해상 안전을 기원한다.

방사탑이 설치된 큰개 바로 남쪽에 있는 '볼래낭 할망당'엔 사연이 담겨있다. 예전 바다에 출몰한 왜인들이 해안가에서 일을 하던 이 마을 여인인 박씨를 겁탈하려고 했고 이에 박씨가 도망쳐오다 '볼래낭' 밑에서 죽었다. 마을주민들은 박씨 여인을 위해 그 자리에 당을 만들어 위로해왔다. 이 때문에 '볼래낭 할망당' 앞을 지나칠 때 남자는 머리를 돌려서 가야 한다.

박씨 여인은 아기를 낳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 탓에 주민들은 박씨 할아버지를 양자로 들여 신흥동산밭에 하르방당을 세웠다. 하지만 이 당은 일제시대에 폐당되었다고 알려진다.

신흥리는 매년 음력 정월 초 아흐레날 '볼래낭 할망당' 인근에 있는 어촌계 창고에서 해신제를 진행하는데 신과세제를 겸해 치른다.

굿을 집전하고 있는 김순아 큰심방.

이 지역의 큰심방인 김순아(73·여)씨가 메인 심방을 맡아 굿을 집전하고 있다. 현재 조천읍 선흘1리 알당에 당맨심방이기도 한 김순아 큰심방은 함덕리와 조천리의 잠수굿도 집전하고 있다. 올해 신흥리 해신제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곁에는 큰아들인 김영철(51) 심방이 항상 같이한다.

해신제는 이 마을 어촌계가 주관이 되어서 진행한다. 대부분 해녀들이 제물 준비부터 모든 것을 도맡아 하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서 물질에 나서는 해녀는 20여명에 달하고 조합원은 50명이 넘는다.

단골이 적어 매년 신을 청해 해신제 등을 열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들은 "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신을 위한 굿판을 여는 것이 마치 자신들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김순아 큰심방은 "조천읍 지역에서만 심방일을 하다보니 단골과의 유대관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단골들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굿을 준비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매번 심방들은 최선을 다해 굿을 집전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김 큰심방은 한겨울임에도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며 굿판을 이어갔다. 모든 제차가 끝날때까지 열과 성의를 다하는 모습이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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