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프롤로그

[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1)프롤로그
제주 역사문화의 중심, 그 기억을 살리자
  • 입력 : 2014. 07.15(화) 00: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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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원도심 전경. 제주 역사문화의 중심지였던 도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문화적 재생을 추진해야 할 때다. 사진=한라일보 DB

낡고 오래된 건물 품은 도시 궁색하고 초라한 것인가
오해·편견 벗고 깊이있는 유산 지닌 장소로 재생해야

제주북초등학교 동창생들은 추억에 휩싸여 있었다. 지난 5월 31일 제주시 칠성로에서 관덕정, 현대극장, 제주성곽, 오현단, 산지천으로 이어진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의 제주시 원도심 옛길 탐험 현장. 원도심 구석구석을 발로 누비는 동안 50대 초반의 동창생들은 유년의 어느 날을 약속이나 한 듯 풀어냈다. 세대를 이으며 켜켜이 삶의 나이테를 두른 원도심은 그 순간 '살아숨쉬는 박물관'이 되었다.

지난달 27일 대구시 중구. 1.64㎞에 이르는 '근대문화골목'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가 거주하던 고택 내부를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든 관광객들을 만났다. 개방 시간이 지난 터라 그들은 담장 위로 오른 석류나무를 배경으로 고택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대구 중구 지역엔 근대문화골목 말고도 경상감영달성길, 패션한방길, 삼덕봉산문화길, 남산100년향수길 등 지금까지 원도심 골목투어로 개발된 코스가 5개나 된다. '서른 즈음에'를 부른 가수 김광석의 노래와 삶도 골목투어 장소에 속해있는 방천시장 '김광석 길'에 흐른다.

▶'구제주'의 미래는 '신제주'일까=전국적으로 원도심 재생이란 말이 번지고 있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개발계획의 세찬 바람 속에 '신제주'와 대비되는 '구제주'는 궁색하고, 오래되고, 초라한 시설이 몰려있는 지역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언젠가 '신제주'처럼 변할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달라지고 있다. 원도심이 지닌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는 원도심을 통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움직임 속에 삶의 기억이 배제된 문화공간을 꾸미고 원도심을 재생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또다른 인프라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이 원도심 재생의 해법은 아니어서다. 부수고 새로 지으며 원도심 재생 사업을 벌이는 이들을 향한 쓴소리가 들린다. "기억이 사라진 도시는 미래도 없다."

새롭게 선보이는 '제주 원도심, 이야기의 발견'은 칠성로로 대표되는 제주시 원도심 재생의 방향을 찾아보려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원도심 풍경이 오래도록 보존된 유럽, 일본 등의 지역와 달리 한국, 그중 제주는 개발의 논리 속에 색깔있는 도시 문화 유산 등을 지켜오지 못했다. 자연경관만이 아니라 제주사람들의 생활 흔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가 그만큼 드물다. 후미진 골목길을 통해서야 간신히 지난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그래서 원도심 재생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제주식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지난 5월말 진행된 제주시 원도심 옛길 탐험.

▶도심 문화공간 다방이 있었다=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에는 수많은 피난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백치 아다다'를 쓴 소설가 계용묵, 현존하는 구상회화의 대표작가 장리석 등 이름난 예술인들은 칠성로의 어느 다방, 여관에서 마음을 녹이고 몸을 뉘였다.

1960~70년대엔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 발표 공간이자 제주도민들의 문화공간이 칠성로와 그 부근에 모여있었다. 현재 국내 화단에서 '극사실주의 회화 작가'로 손꼽히는 고영훈은 대호다방에서 '이것은 돌입니다'라는 작품을 전시했다. 원다방, 호수다방, 청탑다방, 요안다방, 백록다방, 소라다방, 산호다방, 남궁다방, 정다방 등 한 시절 도심을 불밝혔던 그 공간들엔 제주가 낳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겹쳐진다.

그 다방들은 지금 다른 가게로 바뀌었지만 칠성로의 '문화 재생'을 꿈꾸는 공간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원도심이야말로 도시의 기억을 재생시킬 수 있는 장소라며 뜻있는 젊은 작가, 기획자들이 찾아들고 있다. 산지천 분수대광장 인근 건물에 둥지를 튼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 문화카페 '왓', 대동호텔 한켠에 들어선 '비아아트' 갤러리, 외국인들에게 제주 원도심의 참맛을 알려주겠다며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 '비앤비판' , 아트숍과 여행사를 겸하는 '더 아일랜더' 등은 어느 시절 동백다방이고 원다방이고 대호다방이 아닐까.

최근 철거 논란을 빚고 있는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

▶하나둘 부서지는 건축유산=이번 기획에서는 지자체가 관여하고 있는 원도심 재생 사업에 대한 '다시보기'도 이루어진다. 산지천 주변에 조성 예정인 탐라문화광장, 옛 코리아극장을 활용한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할 옛 제주대병원 인근 빈 점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원도심 어디쯤 힘겹게 자리한 건축유산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최근 제주시 일도1동 동사무소 동쪽 옛 농림수산검역본부 제주지원 청사, 산지천변 서쪽에 있는 고모 씨 가옥에 대한 철거 추진에 맞서 보존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는 점은 원도심이 품어온 역사문화적 자산을 후대에 전승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서서히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함께 제주를 떠나 대구와 군산 지역을 살피는 일은 칠성로 일대 원도심에 대한 문화적 재생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구에서 진행되는 골목탐방 '근대로의 기행', 군산 내항 일원의 '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 등 해당 지자체를 돌아보며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보겠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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