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레미제라블'을 영화로 보고난 후

[하루를 시작하며]'레미제라블'을 영화로 보고난 후
  • 입력 : 2013. 10.30(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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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 6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였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출판계에서도 5권의 완역본 출간에 나섰다. 문인 행세에 따른 자발적 책임감이랄까, 나는 왠지 꼭 봐야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왔었다. 바쁘단 핑계로 책 한권도 정독하지 못하는 일상이 아니었던가. 이참에 명작의 의미도 다시 새겨보고 흔치 않은 뮤지컬 형식의 영화감상도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뮤지컬 영화는 아직 변방에 있었다. 영화의 틀은 가졌지만 화면의 진행이 더디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을 보러갔을 때 내 눈앞엔 보기 드문 대작의 고전이 펼쳐졌고 나는 영화관을 꽉 채운 관객들 속에 한 명이었다. 3시간이나 육박하는 긴 상영시간동안 진지한 무게감에 나는 포위당하고 있었다.

전문가들도 호평을 하였다. 콘서트도 많은 부분을 보정하는 게 요즘 현실인데 레미제라블은 대사뿐 아니라 노래까지도 모두 배우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르고 동시녹음을 하였기 때문이다. 노래를 직접 부르며 배우들이 실감나게 연기하는 것과 이미 녹음한 노래에 입모양을 맞추어가는 배우들의 연기 사이에는 얼마큼의 간극이 발생할 것인가. 톰 후퍼 감독은 이를 미리 알고 그동안 뮤지컬 영화가 가지고 있던 틀을 과감히 손질하였던 것이었다.

'레미제라블'은 1862년 출간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 '장발장'이란 제목의 축약본으로 이야기를 접했었다. 그리곤 한동안 '레미제라블'과는 별개의 작품으로 알고 지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나라에서 방대한 작품의 한 토막을 떼어내 지난 수 십 년 동안 동화처럼 유통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 '레미제라블'은 오래전 책으로 접했던 것보다 애절함이 더 진하게 남아있다. 뮤지컬 영화의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감동이 내내 나를 들뜨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훔친 빵 한조각에 징역형을 받고 그 부당함에 대하여 탈옥을 감행하고 이에 자베르 경감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했던 한 인간의 비극적 삶에 대한 연민은 여전했다.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시대상을 핑계로 도덕적이지 못한 주인공의 행실을 나는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감동은 스토리에 묶여있지 않았다. 군중의 코러스와 함께 등장한 웅장한 바리케이드에 나는 진한 전율을 느꼈다. 희망이 없을 때 민중은 저항을 선택하던가. 격동의 시대에 우리들이 겪었던 민주화의 물결이 오버랩되어 목전을 스쳐갔다.

강한 톤의 대사보다 부드러운 노랫말에 힘이 들어있다. 솔로의 뛰어난 보이스보다 집단의 소리를 모으는 코러스의 힘 때문이었다. 나는 이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5권의 완역본으로 다시금 레미제라블을 만나고 싶다. 인간 장발장보다는 그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의 깊은 울림을 이 가을 다시 들어보기 위함이다.

<허경자 수필가·서귀포문화원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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