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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21)한경면 금등리
배타성이 설자리 없는 양성평등 제주어마을
양기훈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9.18. 03:00:00
[한라일보] 이 마을의 특징은 소박한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90세 넘는 할머니가 쪽파 농사 수확을 하면 마을에서 운영하는 저온저장고까지는 옮겨 올 수 있다. 할머니는 리사무소까지 걸어가서 이를 알린다. 구매처에 알려서 가져가라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해도 밭에 나가서 일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우리네 할머니들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일이다. 일을 해야 살아있음을 확인하시는 분들을 위해 저온저장고를 만든 것이다. 어르신들이 납품하러 먼 곳까지 갈 수가 없으니 운영비가 큰 부담이 되더라도 저온저장고를 만든 이유다. 의료기관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길 때, 리사무장에게 부탁을 하면 차비부담 없이 마을에서 운행하는 차량으로 모시고 간다.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금등리 마을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노인복지 시스템이다. 마을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마을. 거창한 구호가 난무하는 세상에 이토록 내색하지 않고 조용하게 배려와 보살핌을 실천하는 곳, 사람들이 더욱 아름다운 마을 금등리다.

고춘희 이장

동쪽에 판포리, 서쪽에 신창리, 남쪽으로 저지리와 조수리가 이웃하고 있다. 바닷가 쪽에는 본동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개'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수장동'이 위치하고 있다. 이 두 자연마을로 이뤄진 마을이 금등리다. 반농반어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살아온 마을이다.

마을 영역 안에는 오름이 없는 대신 낮은 동산들이 많다. 절동산, 천왕동산, 남동산, 셋짓동산 등, 동산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다는 것이다. 경작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노동력과 집념이 필요했던 상황이었음을 마을 곳곳을 다니다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온화하고 정감이 넘치는 사람들이지만 내면적 강인함을 밭들이 증명하고 있다.

바닷가 용천수 물맛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한 개에는 큰 물 다섯 개가 있다. 비러물, 순두물, 밧홈물, 애개수, 용다리. 가뭄이 들면 저지리나 조수리 같은 바닷가 없는 마을에서 달구지를 끌고 내려와 물을 길어가기도 했다. 윗동네라고 할 수 있는 수장동에는 활뼈물과 수젱이물, 말한못이 대표적인 물이다. 조간대에 돌담을 쌓아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던 '원'도 특징적이다. 개창원, 진진원, 모살원 등이 있다.

고춘희 이장에게 금등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열린 마음".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거나 터부시 하지 않는 주민들의 자세가 하나의 당연한 문화가 돼서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로 변모를 하게 된 것은 마을회의에 남녀구분 없이 누구나 참석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서 더 크고 차원 높은 일체감을 형성하게 된 것. 다양성을 통한 발전의 파이를 키워내는 참으로 강한 마을이다.

2018년 3월 '제주어마을'로 선정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언어의 측면도 중요한 요소지만 마을 안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과 소박한 쉼터들, 취락구조 자체를 그대로 간직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내면에 깔리지 않고서는 개발 만능으로 점철된 시대적 상황에서 온전하게 버티기 힘든 상황이기에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한 마인드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제주어에 연스런 애정이 녹아있게 되는 것. 숨길 수 없는 자연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존중받아 마땅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체성이라고 하는 요소와 탈배타적 개방형 열린 사고가 관념적으로는 대척점에 서있는 요소다. 그러한 상반된 개념이 이 마을 금등리에서는 전혀 이질적 충돌이 발생되지 아니하고 용융되어 하나의 새로운 정신적 자산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학자들이 이러한 구조를 창출해 낸 과정에 대해 심도 있는 사회조사와 논문들을 써야 하겠다. 한마디로 전국적 리 단위 성공모델로 연구대상이다. 앞으로도 많은 역경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은 마을공동체 역량을 비축하고 있는 주민들의 힘을 느끼며. <시각예술가>



밭과 바다 그 빛의 결합
<수채화 79㎝×35㎝>

엄밀하게 두 개의 밭이다. 해녀들에게 저 바닷가는 또 하나의 생계공간 '바당밭'이라고 하였으니 그렇다. 어부들이 고기잡이하던 바다. 그리고 가까이 밭이랑과 고랑이 줄지어 있는 밭. 일주도로 금등리 버스정거장 부근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다.

밭과 바다 사이에 오후 4시의 햇살이 너무도 강렬하여 그리게 된 것이다. 지금이다. 금등리의 금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시간성을 광선의 모습으로 치환하여 그린 것이다. 밭의 북서쪽으로 담을 높게 쌓고 나무도 키웠다. 엄청난 하늬바람에 농작물이 견딜 수 있도록 방어용 성을 쌓은 것과 같아서 감동 어린 눈빛으로 그려나갔다. 태양광선이 부서지는 바닷가와 그 광량이 얼마나 강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림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존재의 이유를 밝힐 수 있는 회화적 단서는 저 눈부심이다. 어느 곳인들 태양계의 한 지점을 차지한 바닷가이니 원초적인 광선의 고마움이야 없으랴마는 밭과 돌담이라고 하는 사람의 정성스러운 삶과 함께 하니 자연과 사람이 화폭 하나 속에서 정겹게 일상을 이야기한다.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의 주장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는 여기는 금등리다. 농사도 짓고 바닷가에서 고기도 잡았으며, 해녀들은 물질하여 문어와 전복을 땄을 것이다. 자연에서 모든 것을 얻으며 살았던 그 공간을 지금 그리는 이유는 태양광선이 정지시킨 어떤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평이함 속에서 진정한 빛의 의미를 얻게 된다.



가을햇살과 지붕 위에 돌들
<수채화 79㎝×35㎝>

풍토성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풍경화는 심장을 잃어버린 동물과도 같다. 그러한 거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로되 이 마을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경험치가 그대로 저 지붕 위에 돌들로 드러나 있으니 아니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랫부분을 길게 차지한 길과 경계를 이루는 근경 돌담을 시작으로 집담에 이르기까지 공간적 과정은 마을의 역사 그 자체다. 나이 지긋하신 나무 한그루가 집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은 그 위상 자체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음덕(陰德)이다. 집이 지어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눈부신 햇살 아래 펼쳐진 원경을 통하여 공간적 구성 요건은 충족되었다. 저 아래 밭에서 바라보면 언덕이나 동산 위에 지어진 집이다. 그래서 폭우에 물 빠짐이 좋을 것이다. 문제는 바람이다. 태풍이 불어올 때, 가장 무섭기로 유명한 '산방내기' 바람이 지나는 마을.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이 산방산에 부닥쳐서 빌딩풍 효과와 유사한 회오리성 증폭을 하며 금등리까지 당도하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여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경험하기 힘든 바람의 위력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가버렸던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에 유비무환의 자세로 돌들을 눌러놓은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들의 공통적인 증언은 태풍이 불 때 바람은 엄청나다는 것. 독특함을 그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바람의 섬 제주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바람 산방내기를 이겨내며 살아온 분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다.

<제작 지원=제주특별자치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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