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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19) 청년들의 공동체적 효심으로 이룩한 장수마을
양기훈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8.21. 03:00:00
[한라일보] 끊임없이 미래지향적인 진취성을 발휘하는 마을로 각인된 서광서리는 중산간 곶자왈과 목장지대를 광범위하게 보유한 곳이다. 암반이나 잡목들과 싸워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한 개척정신이 수백 년을 이어지며 강인한 결속력으로 승화된 마을이기에 정신문화적 관점에서 소중한 사회성을 보여주고 있다.

안덕면 12개 법정리 중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구억리, 남쪽으로는 덕수리, 북쪽으로는 금악리와 인접해 있다. 동쪽으로는 넙개오름과 남송악을 사이에 두고 동서광리와 경계를 이룬다. 마을의 면적은 9.7㎢이고 총면적의 40% 가까이가 산림지대다. 넓은 초원과 오름들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경봉 이장

사료와 구전들을 종합해 보면 이 지역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600~7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옛 문헌이나 지도에 등장하는 마을 명칭은 자단리(自丹里·1639년 이전), 광청리(光淸里·1872년 이전), 서광리(西廣里·1911년), 서광2구(1938년), 서광리(1945년), 서광서리(1963년)라는 흐름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4·3으로 입은 피해가 많은 마을이기도 하다. 1948년 11월경 토벌대에 의해 내려진 소개령으로 관전동, 응진동, 사수동, 진부동이 불태워졌다. 마을 아래로 내려가 생활하던 18세 이상 60세 이하 남성들은 토벌대에 의해 안덕지서에 수감됐다가 총살당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희생자 수는 총 90여 명에 달한다.

현재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마을의 특징은 인구 대비 청년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조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농 현상의 여파와는 상반된 마을 분위기는 마을 발전의 강력한 원동력이요, 활력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들도 많이 낳아서 보통 한 가정에 서너 명이라고들 한다. 놀라운 사실은 노인인구 135명 중 85세 이상이 40명을 넘는다고 하니 3대가 함께 살아가는 전통적인 생활상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다른 마을에서 부러워할 지경이니 연구대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분명한 것은 전통적으로 청년회가 왕성히 활동해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는 것이다. 일례로 노인들이 사는 집 방충망 갈아주기 사업과 같은 일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수시로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이웃청년들의 마음가짐과 실천들이 모여 오늘날과 같은 장수마을의 위상을 확보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어르신들의 장수비결은 많은 수의 손자들의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을엔 독특한 조직이 있다. 청년회와 노인회 사이에 '장년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는 것. 50세에서 65세 사이 연령이 모여 마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은 크나큰 귀감이기도 하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의식에서 오는 성취감을 통해 행복지수를 높이는 지혜로운 사회가 서광서리다.

이러한 힐링장수 마인드가 공감대를 형성해 지역균형발전지원사업 공모에 참여, '쑥향 가득 힐링센터' 사업이 선정됐다. '쑥감도(쑥을 태워 효과를 얻는 치유 방식)' 사업이 본격적인 개장을 앞두고 있다. 마을공동체의 관심사와 열망에 부응하는 획기적인 장수프로그램으로 희망찬 실천을 이어간다.

이경봉 이장에게 서광서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대답했다. "고찌 살아가잰 허는 거마씀." 따로따로 사는 것은 모두에게 해롭다는 생각.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따로따로는 극복할 방법도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희망 또한 함께 키워갈 수 있는 것이지 따로따로 성취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오히려 마을사람들이 보유한 집단적 본능이요, 기질에 가깝다는 확신이다.

아름다운 농촌마을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 그대로 삶의 품격이 공동체의식 속에서 드러난다. 모두가 부지런한 일상 속에서 '마을'이라는 이웃공간을 위해 열정을 쏟는 풍요로움이 있다. <시각예술가>



도로에서 만나는 시간성
<수채화 79㎝×35㎝>


'오늘은 어제의 결과물이며, 내일은 오늘이 낳은 것'이라는 너무도 평이한 사실을 길 가다가 발견해 그렸다. 마을의 현재 모습을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길가의 원근법 상황이다. 사통팔달에 가까운 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한 마을답게 중심도로가 크고 넓다. 도로와 과수원 사이를 겹담으로 쌓은 정성이 견고하다. 화면상의 주인공은 감귤창고로 보이는 소박한 건물. 지금 경로당에 있을지 모르는 이가 청년시절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귤에 대한 희망과 의존도가 높았던 그 시절의 열정이 느껴지기에 더욱 아름답다.

과거의 시점이 풍경화면에서는 근경이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가서 오늘이라는 미래를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 된다.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곧 시간을 이어주는 놀라운 장치라는 생각에 꼼꼼하게 바라보며 그렸다. 멀리 보이는 상가 건물. 이 감귤창고를 짓던 시기에는 상상도 못했을 미래다. 세대가 흐르고, 끊임없는 마을공동체의 각고로 도농복합지역에 가까운 모습으로 발전했다. 상전벽해에 가까운 변화 속에서도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이어가는 심성을 풍경화라는 장르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다.

다시 세월이 흐르면 풍경은 바뀔 것이다. 어떠한 역사적인 변화도 풍경을 앞서갈 수는 없는 것이니까. 마을 사람들은 정겹게 오늘도 그러한 타임캡슐을 미래를 향해 보내는 중이다. 지금 아이들이 자라서 펼쳐보게 될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서광서리운동장을 바라보며
<수채화 79㎝×35㎝>


이렇게 아름다운 운동장이 있다니! 나무 많은 자연과 도로가 만나는 곳에 관객석까지 소박하게 마련한 마을공동체 운동장이다. 농촌마을에서 이룩한 신화적인 감동이 배경에 깔려 있어서 그리게 됐다.

서광서리라는 마을에 학교가 없는 관계로 축구와 같은 체육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한 응어리를 풀기 위해 1990년대 들면서 마을운동장을 만들어버리자는 오기에 가까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서광리 청년들의 지속적인 봉사로 매해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갔다. 얼마나 많은 청년회원들의 회의와 분투와 각고가 있었을까. 집념에 가까운 청년들의 결속력과 일체감이 2002년에 이르러 축구장 바닥정비, 배구장 기초공사, 조경수 식재를 마치고, 다음 해에 운동장 스탠드 공사를 하고, 2005년 드디어 저기 나무 사이로 보이는 잔디구장이 완성됐다.

이 감동스러운 마을자치역량을 풍경화로 그리기 위해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이 자연석 앞에서 파안대소가 일어났다. 청년들의 땀으로 이룩한 운동장. 그 노동현장의 상황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조경수를 심는 과정에서 골치 아픈 대석 덩어리가 등장하자 옮겨서 치우려다가 그대로 뒀다. "그냥 놔두자! 우리를 닮았네. 형상이 꼭 저돌적인게 멧돼지도 닮았고… 자연석이니까 나무하고도 어울리거든." 약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이런 운동장 만들지 못한다. 저 돌처럼 우직한 청년들이 모여서 만든 일이기에 상징조형물이라 생각하고 그린.

제작 지원=제주특별자치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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