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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철의 목요담론] 정방폭포, 평화예술공간을 꿈꾸다
양상철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8.13. 03:00:00
[한라일보] 서귀포 정방폭포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방천 상류에서 흘러온 맑은 물은 절벽을 타고 바다로 떨어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그러나 이 풍경은 또 하나의 시간을 품고 있다. 정방폭포는 제주4·3을 대표하는 역사 현장이다.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고, 남겨진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긴 세월을 견뎌야 했다. 오늘도 쉼 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제주의 아픈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제주4·3은 어느 한 장소만의 역사가 아니다. 한라산과 오름, 마을과 바다까지 제주 전역이 그 비극을 함께 겪었다. 희생자는 낯선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의 부모였고, 형제였으며, 삼촌이었고, 이웃이었다. 그렇기에 4·3은 4월에만 기억하는 추모의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과 교육,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겨져야 하며, 다음 세대에게도 살아 있는 기억으로 전해져야 한다.

현재 정방폭포 인근 서복기념관 동북쪽에는 작은 4·3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정방폭포가 제주4·3을 상징하는 역사 현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공간은 너무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다. 역사는 감추거나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더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오래전부터 비극의 역사를 예술과 문화로 기억하는 길을 선택해 왔다.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추모비를 넘어 시민과 여행자가 역사를 성찰하는 공간이 됐다. 이탈리아 볼로냐는 1980년 기차역 폭탄테러의 상처를 광장과 문화행사 속에 담아내고 있으며,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원폭의 참상을 평화와 생명의 가치로 승화시켰다. 이들 공간은 비극을 감추지 않았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예술은 상처를 덮는 장식이 아니다. 아픔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와 나누는 가장 오래된 언어다.

정방폭포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정방폭포 상류의 정모시공원에서 자구리공원에 이르는 해안 공간을 하나의 평화문화권으로 연결하고, 절제된 공공미술과 문학, 음악, 전시가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주의 평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해마다 열리는 평화예술제는 추모행사를 넘어 4·3의 의미를 오늘의 문화로 이어 주는 장이 될 것이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동시에 제주의 아픈 시간을 마주하게 되고, 그 기억은 다시 자신의 삶과 평화의 가치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역사는 기억될 때 비로소 미래를 밝힌다. 아름다운 풍광 뒤에 숨은 정방폭포의 깊은 상처를 예술과 문화의 힘으로 다음 세대와 나누어야 한다. 비극을 예술로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오늘의 삶으로 이어 가는 가장 성숙한 방법이다. 정방폭포는 그 첫걸음을 시작하기에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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