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영화觀] 고독의 오후
죽거나 혹은 아프거나
진명현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6.15. 02:00:00

영화 '고독의 오후'.

[한라일보] 소가 죽는다. 자연사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우리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도축의 방식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전시 당하며 그렇게 죽는다. 어떤 말도 얹을 수 없는 잔인무도한 죽음이다. 소를 죽이는 이는 투우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이다. 두려움과 떨림을 간직한 채로, 화려한 의상으로 무장한 채로 투우사가 소를 죽이러 경기장으로 출근한다. 이내 소와 투우사 사이에 죽음을 앞에 둔 팽팽한 침묵이 흐른다. 가까이 더 가까이 서로에게 다가서며 어느 한쪽의 죽음으로 시간을 몰고 가는 동안 관중들은 환호성으로 눈 앞의 죽음에 다가서려 한다. 뜨거운 오후의 햇살이 사그라들고 피아의 식별이 불가능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 이전, 기묘한 침묵과 기이한 함성이 뒤엉킨 시간이 <고독의 오후>이다.

알베르 세라 감독의 다큐멘터리 <고독의 오후>는 소와 투우사 사이 죽음을 두고 벌어지는 시간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영화다. 수많은 전쟁 영화와 호러 영화, 총과 칼로 죽음을 전시하던 액션 장르의 영화들을 봐왔음에도 이 영화의 죽음을 대하는 것은 놀랍도록 생경한 경험이었다. <고독의 오후>는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환경 영화가 아니며 투우사라는 직업을 조명하는 인물 다큐도 아니다. 이 영화는 그저 그 현장에 참전한 두 생명체의 사투를 관객들에게 증거처럼 내미는 영화다. 당연히 어느 한 쪽의 입장이 되려는 시도는 없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비추는 것은 어둠 속에 있는 소다. 검은 소의 검은 눈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혹은 그저 눈 앞에 있는 낯선 물체 앞에 소가 존재하고 있다. 아직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관객들은 소의 눈에서 무구함과 공포를 엿본다. 경기를 기다리는 관객의 마음 속에 측은함과 죄책감이 자리하기 시작하면 영화는 이내 소의 적수를 비춘다. <고독의 오후>의 또 다른 주인공 안드레스 로카 레이는 스타 투우사다. 젊고 아름다운 남성의 육체 위에 화려한 투우복이 입혀져 있다. 옷 위에는 흥건한 피의 흔적이 묻어 있고 그의 옷은 익숙하게 벗겨지고 다시 갈아 입혀진다. 홀로 벗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불편하고 아름다운 옷 안에 잘 다듬어진 육체를 집어 넣은 그는 다시 경기장으로 향한다. 이제 아름다운 투우사가 무구한 소를 죽음으로 몰고갈 것이다. 당신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고독의 오후>가 시작하고 10분쯤 지났을 때, 그러니까 이 소가 저 인간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것이고 수많은 인간들이 소의 죽음을 응원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극장 좌석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무구한 소의 죽음을 지켜볼 용기가 없었고 이 관람이라는 행위가 불쾌한 관음에 동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영화에서 눈을 둘 수 없는 동시에 눈을 뗄 수도 없었다. 영화는 강력하게 관객을 그곳으로 데려다 놓았고 어떤 변명이나 첨언도 없이 자신이 목도한 현장을 내놓고 있었기에 증인이 되는 심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 영화의 결말 까지를 마주하는 쪽을 택했다. 기묘한 시간이 흘렀다. 각기 다른 소들이 경기장에서 죽어 나갔고 관중들의 환호성은 멈추지 않았으며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는 점점 더 미쳐가는 것 같았다. 죽이기 위해서인지 죽지 않기 위해서인지 혹은 스타 투우사로서 살아 남기 위해서인지가 모호하게 뒤엉키는 한 인간의 얼굴을 카메라는 집요하게 쫓았다. 영화의 초반 소에 의해 인간이 죽기를 바라기까지 하던 나는 외롭고 성실하게 그리고 무희와 무당을 닮은 몸짓으로 격렬하게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의 육체에서 이상한 측은함을 느꼈다. 그 또한 이 오래되고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구경거리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정교하게 계산된 영화의 장면들을 아름답다고도 느꼈다. 그것 역시 저항할 수 없이 분명히 느낀 감각이었다. 죄책감과 불편함, 측은함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채로 소가 죽고 인간이 죽을 뻔 하며 경기가 끝나고 영화도 끝이 났다. 화면은 이내 캄캄한 어둠으로 뒤바뀌고 죽음 전에 내쉬던 소의 거친 숨소리와 죽음 앞에 헐떡이던 인간의 바튼 숨소리가 귓가에 잔상처럼 남았다. 그리고 오래 잊히지 않고 있다. <고독의 오후>를 보는 일은 야만의 행위를 멈추라는 항의로 남을 수도 있고 죽음 앞에선 위력과 무력을 실감하는 체험일 수도 있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시간을 붙잡아 포박하는 지를 목도하는 경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의미에서 <고독의 오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찾아오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쉽게 봉합할 수 없는 시간들 앞에서는 당연히 아물지 않는 일 또한 필요할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