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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병의 목요담론] 경계(境界)에서 경계(警戒)를 넘어, 상생의 길로
김완병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26. 05.28. 03:00:00
[한라일보] 멀리 평화로에서 새별오름을 보면, 남사면과 북사면의 식생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경관과 들불 축제를 위해 인위적으로 관리한 덕분이다. 제주의 전통적인 세시풍속 중 하나인 '방앳불'을 전승한 들불 축제는 초지대의 진드기와 묵은 풀을 태워 오던 풍습을 문화관광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출발했다. 초기에는 오름의 남사면에 불을 놓았으나, 최근에는 불 없는 축제로 전환했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경계에서 축제 방식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결국 토론 끝에 모두의 무사 안녕을 택했다.

제주 사람들은 연초에 마을별로 위치한 목장을 대상으로 불을 놓았다. 목장 내 잡풀이나 키 작은 나무들을 없애 가축들의 편의를 도왔다. 들판에 불을 놓는 일이 워낙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서 주민 모두가 나서야 했고, 특히 경험이 많은 어르신의 말 한마디가 중요했다. 돌담을 쌓거나 땅을 파거나 해서 불길이 경계를 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까닥하다간 불길이 인근의 오름을 넘어 한라산으로 향할 수 있다. 그러니 잔불이 꺼질 때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제주도는 타원형 화산섬으로 바다와 경계(境界)를 이루고 있다. 해안선을 지나면 마을별로, 경작지별로 경계선이 뚜렷하다. 공동과 개인 소유가 분명하다. 앞바다의 영역도 육지의 밭처럼 이웃 동네와의 경계가 명확하다. 조금이라도 영역을 넘어 물질을 하거나 해산물을 채취했다가는 오름과 곶자왈의 영역 분쟁만큼이나 마을 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다행히 전승돼 온 관례가 약속과 제도로 이어지고, 수눌음 정신으로 다툼 대신에 협동으로 뭉쳤다. 불길이 넘지 않아야 했던 과거의 경계가 이제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온기로 진화돼야 한다.

해안을 따라 초소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 사람들은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환해장성과 진성을 쌓았다. 전망이 좋은 위치에 세워진 봉수와 연대 시설도 군사시설이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섬의 해안 경계선을 따라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을 골라 전경 초소들이 구축됐다. 점차 군사시설의 현대화와 첨단화를 지향하면서, 초소들이 방치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해안도로 변에 세워진 일부 시설들은 흉물처럼 노출되면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예로부터 섬은 늘 외지의 시선을 경계(警戒)했다. 평화로웠던 섬이 침략의 대상지였고 전쟁터가 됐기에 지금도 경계선에 서면 늘 불안하다. 적을 감시하던 초소와 굳게 잠긴 자물쇠는 오히려 섬사람들의 마음을 통제하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오름의 방앳불 경계선이 무너지면 이웃하는 오름뿐만 아니라 한라산과 제주도 전체가 위태로웠다. 남겨진 초소들이 이웃 간 또는 이해 당사자들 간의 분쟁 씨앗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 자칫 사라질 뻔한 방앳불 전통이 들불 축제로 새롭게 탄생했듯이, 섬을 지켰던 경계 초소가 이제는 사람과 자연을 잇는 새로운 공존과 상생의 공간으로 되살아야 한다. <김완병 제주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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