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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의 문화광장] 따뜻한 남쪽나라의 어두운 그림자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6. 01.13. 00:30:00
[한라일보]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반도의 겨울철에 오키나와 여행은 '따뜻한 남쪽 나라의 이상향' 그 자체다. 삼별초가 진도와 제주도에서 최후의 항전을 마치고 떠나간 남쪽 나라, 홍길동이 향한 율도국의 그 남쪽 나라다.

아직 정사로 자리 잡지는 않았지만, 학계의 연구 성과는 한반도와 오키나와의 연결을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오키나와는 이토 히로부미의 설계 아래 일본에 병합되기 전까지 별도의 왕국이었으나, 근대 제국주의 질서 아래에서 국가 소멸을 맞이했다. 조선 왕국 역시 류큐 왕국과 같은 길을 걸었다. 한반도는 목숨을 건 독립운동과 항일 전쟁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쟁취했지만, 오키나와는 미국령에서 일본 직할로 바뀐 1972년의 '오키나와 반환'으로 독립국가를 되살리지 못했다.

20세기를 거치며 조선과 류큐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갈렸지만, 역사 속 두 나라의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긴밀하다. 오키나와 우라소에성 일대에서 출토된 '고려기와장(高麗瓦匠)' 명문 기와에는 '계유년 고려와장(癸酉年 高麗瓦匠)'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를 1153년(고려 의종 7년)으로 비정하고 삼별초의 이동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견해가 학계의 정설에 가깝다. 이를 시작으로 자리 잡은 류큐의 문명은 1429년 류큐 왕국(琉球王國)의 개국으로 이어진다. 1609년 일본 사쓰마번의 침입으로 왕국은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적 설계 아래 메이지 국가의 중앙집권과 제국주의 전략 속에서 '류큐처분'이 단행돼 일제에 병합됐다.

류큐 병합을 통해 일본은 근대적인 국제 질서의 방식으로 타국을 집어삼킨 자국의 최초 사례를 만들었고 조선이 그 뒤를 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것은 류큐의 전례가 조선에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중국 제국에서 일본 제국으로, 일본 제국에서 미국 제국으로 옮겨온 근현대 국제질서의 변동 속에서 나라를 잃고 수탈과 착취 속에 20세기를 살아온 오키나와와 한반도 사람들의 고난사는 동병상련의 비극이다. 따뜻한 남쪽나라 오키나와 여행은 빛을 찾는 여행으로서의 관광(觀光)이 아니라, 역사의 유훈을 배우는 다크투어로서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반복되는 것이 역사다. 근대기 동아시아 질서 재편의 희생자가 된 오키나와와 한반도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불의 고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최전선, 한반도-제주-오키나와-타이완으로 이어지는 불의 고리가 그것이다. 광활한 해양 강역을 가진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는 타이완과 맞붙어 있다. 오키나와 본섬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미군기지들을 지나며 겨울 여행을 마친 지금, 따뜻한 남쪽나라의 이상향 위에 어른거리는 어두운 그림자를 다시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우크라이나, 그리고 베네수엘라에 이어 타이완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50년의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저 우려에 그치기를.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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