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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가시리(加時里)-시간이 더해지는 곳. 중첩되는 의미들이 숱한 이미지를 발생시키는 마을 이름인가! 찾아가면 머무는 시간이 하염없이 늘어나 떠날 생각이 사라질 것 같은 대자연의 품속이다. 필경, 시문에 능한 선비들이 오랜 격론 끝에 마을 이름을 정했으리라는 낭만적 상상을 하게 된다. 원래는 '가스름'이라고 부르다가 한자 이름 가시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설촌 이후 700년의 역사로 이야기하기에는 품은 뜻이 마을 면적보다 더 크다. 청주 한 씨 입도조 한천이 제주에 들어와 터를 잡은 곳이라고 한다. 이성계 제거 모의에 연루돼 제주로 가족과 함께 유배됐다. 500년 뒤에 제주에 유배 왔던 면암 최익현 선생이 감복의 비문을 남겼으니 충의사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곧은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곧은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가시리는 본동, 안좌동, 두리동, 폭남동, 역지동, 생기동과 같은 6개의 작은 동네들이 모여 큰 마을을 이룬다. 면적은 표선면의 43% 정도라고 하니 입이 쩍 벌어진다. 마을공동체가 소유하고 있는 땅만 742㎡(225만평)이라고 한다. 면적이 광활해 가시리를 지나는 냇가만 4개다. 가시리 지번을 달고 있는 오름만 13개 정도. 설오름, 병곳오름,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 족은사슴이오름, 갑선이오름, 번널오름, 붉은오름, 여문영아리오름, 거문오름, 구두리오름, 마은이옆오름, 쳇망오름. 단순하게 땅부자 마을로 바라보기에는 보유하고 있는 잠재력이 더욱 무섭다. 너른 땅과 같이 마을 사람들의 심성도 그 도량이 넓다. 목장에 일자리를 찾아왔던 사람들 중에 주민이 돼 자리 잡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을 보만 포용력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오상문 가시리장 재건 과정에서 방대한 목장지대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발생시킨 어떤 사명감이 오늘의 가시리 철학이 됐다. 마을공동체의 재산은 조상들이 물려준 것이기에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줄 유산이라는 가치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신념. 그동안 광활한 목장지대를 보며 숱한 개발업자들의 유혹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모두 뿌리치고 자연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었던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결속력이 더 큰 미래를 향하여 줄달음질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우직하고 신중한 역사의 발걸음 소리를 듣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오상문 이장에게 마을공동체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뜸 이렇게 말했다. "목장을 지켜낸 힘." 힘이라는 가치관에 방점이 찍힌다. 성장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어떤 불굴의 자존심으로 읽힌다. 또한 땅이 보유하고 있는 힘을 믿고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넓은 면적만큼이나 방대한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마을. 뭔가 비전을 제시해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땅이 없는 마을들에게는 부러움을 사고 있는 가시리. 2007년도부터 이어져 온 마을공동목장 활용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받고 있는 혜택들 또한 다양하다. 주민들의 전기료나 학자금지원 등 마을공동체 자체적으로 이뤄내고 있는 복지사업들을 바라보면서 '옛날도, 지금도, 앞으로도' 시간의 흐름, 마을 이름 그대로 시간이 더해지는 역사의 숨결 앞에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마을. <시각예술가> 시간이 흐르는 길 <수채화 79㎝×35㎝> ![]()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찬란한 원근법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맛본다. 적절한 위치에 배치된 교향악단의 악기들처럼 물상들은 빛의 심포니를 연주하고 있다. 도드라진 것이 없다는 것은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자신의 작은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현듯 저 핑크빛으로 탈색된 지붕을 가진 집 유리창 속이 궁금해진다. 이 풍경처럼 소박하고 욕심이 없는 자연주의자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그리노라니 마을 할머니가 묻는다. "무신 아무것도 어신딜 그렴싱고 몰르키여?" 그도 그럴 것이 길가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도, 짐승도, 그 흔한 자동차도 자전거도 없다. 그러나 주변 모두를 품고 있는 것이 텅 빈 저 길이라는 생각은 떠올랐으나 건방지게 그런 취지의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빙긋이 웃어드렸다. 야릇한 평화의 향기가 느껴지는 가시리의 풍경 속에서 일종의 치유력을 경험하게 된다. 꾸미지 않았기에 더욱 행복해지는 그런 길이 있다. 계속해 걸어가며 그리고 싶은 어떤 포근함이 끌어당긴다. 오름 파노라마 <수채화 79㎝×35㎝> ![]() 이름을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저기 저 오름들의 흐름 속에서 아이러니한 유사성을 발견했다. 오름과 흐름. 단어의 뒷글자가 동일하다는 엉뚱한 발상이 이 그림을 그리는 사이에 떠올랐다. 오름은 흐름을 가져야 오름스럽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곳이 가시리다.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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