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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21)Mazeppa*-김안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입력 : 2025. 10.28. 02:00:00
[한라일보] 나는 듣는다,

마지막 우편물에 적힌 주소지에서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 하얀 국수를 삶고 계란을 풀고,

누군가 냉장고 문을 열고,

누군가 둥근 식탁에 앉아 누군가와 마주하고,

천사가 떨어뜨리고 간 횃불처럼 환해지는 뱃속.

나는 나의 귀로 듣는다, 모든 마음이 내 것인 양,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릇,

끊긴 기타 줄처럼 뒤엉킨 국수,

깨진 겨울,

선생님, 무엇 하나 지탱할 수 없는 검고 가느다란 언어의 팔을 휘두르는 게 한때 직업이었습니다만......

듣는다,

변명을 시작하기 위한 음소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깊고 어두운 약물의 이름을.

*「Mazeppa」 부분

삽화=배수연



청각의 시로 읽고, 존재의 균열을 봐야 하는 'Mazeppa'는 일종의 정신의 몽타주이며, 실패 속에서도 전진하려는 '무능한 윤리'의 시학을 담는다. 말에 묶인 채 광야를 달리는 우크라이나의 비극적인 독립 영웅 마제파를 차용한 시인은 절망 속에서도 감각적으로 들려오는 생의 잔향을 그린다. 그리고 폐허와 겨울 속에서도 여전히 '듣기'를 계속한다. 광야로 추방된 마제파와 조우하는 길은 일단 열애를 거쳐야 한다. "무엇 하나 지탱할 수 없는 검고 가느다란 언어의 팔"을 휘두르던 광기는 초절기교에 해당하지만, 그 무기를 거꾸로 들고 귀대 병사는 이제 볼륨을 낮추며 사랑을 증언하는 자, 실패 속의 생존자로 남아 듣기 위해서라도 실패하고 전진한다. 이것이 '나'의 몫이므로. 그러면 서정적 융화라고 할 수 있는 "둥근 식탁에 앉아 누군가와 마주하고" 국수를 먹을 수 있는, 인간의 온기가 기다리고 있는 주소지가 있다. 쓰기로 치면 파산한 자의 쓰기가 가장 독하지만, 그것은 또 고통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자신을 바로 보는 일이다. 시인은 그럴 때에도 무너진 세계에서 여전히 듣는 자이다. 과연 '시'라는 독물이자 가녀린 '약물'은 무슨 일에까지 쓰일 수 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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