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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미식관광 어디까지 왔나] (3) 미식 인프라 구축
인문학 토대 제주 음식 콘텐츠 확장·전담 부서 설치를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5. 10.21. 03:00:00

2024년 제주향토음식품평회와 WACS(세계조리사연맹) 국제요리경연대회. 제주도 제공

미식·휴양 결합 차별화된 관광 상품 개발 기대감 높아
국제요리경연 등 지속적 지원 통해 경쟁력 확보 필요
"음식이 품은 이야기·문화 소비할 때 콘텐츠 고급화"




[한라일보] 얼마 전 제주도에서 공개한 '제주 MZ관광 발전 방안 연구' 용역 결과를 보면 최근 1년간 제주 지역 방문객들이 여행 중에 가장 만족했던 내용은 '맛집 탐방'(24.9%)이었다. 반면 불만족 사항 중에서도 '미식 서비스 불친절' 응답률(8.0%)이 4위에 올랐다. 미식 체험이 제주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남으려면 단순한 '맛집 순례'를 넘어서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제주 식재료를 이용한 5첩반상 차림. 제주음식문화원 제공

▶참가자 만족도 높았던 도외 미식 여행=사단법인 제주문화포럼은 지난 6월 특별한 도외 문화기행을 진행했다. '식탐' 여행 일정을 짜서 충북 제천시로 향했는데 여느 행사보다 참가자 만족도가 높았다. 조선시대 약령시로 꼽혔던 제천은 약초의 고장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가스트로 투어' 등 미식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약 30명의 참가자들은 제주 밖의 다른 지역에는 어떤 식재료가 있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 등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맛 탐방에 나섰다. 거창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제천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는 소감들이 잇따랐다. 제주문화포럼 원장으로 이 기행에 함께했던 부정숙 제주향토음식 명인은 "제주에서도 외국인 방문객 등을 위해 공공시설 공유 주방을 활용한 제주 음식 체험 프로그램이 개발됐으면 한다"고 했다.

제주도는 지난 9월 2~6일 4박 5일 일정으로 중국 화남 지역 관광객 25명을 모집해 프리미엄 미식 투어를 펼쳤다. 제주~선전 직항 노선 운항에 따라 화남 지역 고소득 시니어를 겨냥해 미식과 휴양을 테마로 고품질 여행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한화 약 400만원의 여행 상품으로 '제주 웰니스 미식 투어'란 타이틀 아래 제주 파인다이닝, 서귀포치유의숲 '차롱밥상', 생각하는 정원 '맷돌 커피' 체험, 제주흑돼지구이·해물탕·갈치구이·흑한우구이 등을 즐기면서 제주의 비경을 누리는 여정을 제공했다.

오늘날과 같은 미식 관광·체험 전에는 음식 테마 거리가 생겨났다. 서부두명품횟집거리, 흑돼지거리, 칠십리음식특화거리, 방어축제거리, 국수문화거리 등이다. 일부는 아예 특화거리라는 명칭을 내거는 등 음식으로 방문객을 유인하려 했지만 초반의 기대와 달리 대부분 정체되고 있는 모습이다.

음식 축제도 문턱을 낮춘 미식 체험 장소 중 하나다. 하지만 1년에 도내 곳곳에서 열리는 수많은 축제 중에서 음식을 주제로 삼은 행사들은 생명력이 짧거나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 때로는 제철 식재료와 축제 개최 시기가 따로 노는 사례가 지적된다.

중국 화남 지역 미식 투어 홍보물. 제주도 제공



▶미식팀 등 컨트롤 타워 역할 부서 고민해야=9회째를 맞는 제주향토음식품평회와 WACS(세계조리사연맹) 국제요리경연대회는 관람객 참여 등 대중성 확장을 꾀해 왔다. 제주도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조리사협회중앙회 제주도지회가 주관하는 이 대회는 도내외 요리학원, 해외 셰프, 대학 조리과 학생 등이 참가해 제주산 식재료를 50% 이상 활용해 창의적인 요리 경연을 벌이는 자리다. 지난해엔 159팀 200여 명이 모이는 등 코로나19 시기에도 해를 거르지 않고 2017년 이래 매년 치러지며 제주향토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계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는 오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3일 동안 제주한라대와 제주관광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예년보다 행사 날짜를 하루 더 잡았다. 기존에는 경연장이 협소해 라이브 경연의 외부 공개가 어려웠던 만큼 이번에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제주)에서 생동감 있는 요리 장면을 선보인다는 구상으로 대관 예약까지 했지만 예산이 마련되지 않아 무산됐다.

지난달 만난 신동진 지회장은 이를 두고 못내 아쉬워했다. 신 회장은 "광주와 부산에서도 WACS 대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제주가 가장 오래됐다. 부산에서는 박람회와 연계해 대대적으로 행사를 운영한다"며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제주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회를 거듭하며 대회 규모가 두 배가량 늘었다고 밝힌 그는 "맛집을 찾아 제주에 온다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은데 현장에서 생생하게 요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며 "WACS 대회는 관람객들이 고정 관념을 깬 음식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미식이 차별화된 관광 자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시기에 전문가들은 제주 음식의 인문학을 강조했다. 지자체 내 전담 부서가 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간편식 고구마메밀범벅. 제주음식문화원 제공

오영주(전 제주한라대 교수) 제주도 무형유산위원회 위원장은 "제주 음식은 제주의 뿌리다. 음식은 시대를 쭉 거쳐온 시간의 함수인데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표 음식을 정할 수는 없다"며 "인기 음식을 고르는 게 아니라 맥락을 알고 연구하면서 제주 음식의 대표성을 찾아야 한다. 음식을 통해 제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 위원장은 "음식이 품은 이야기, 문화를 같이 소비할 때 콘텐츠가 고급화된다"며 "우리 안에서 제주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동진 지회장은 "그동안 WACS 대회를 준비하면서 많게는 1년에 두세 번 담당 공무원들이 인사이동하는 걸 봤다. 다음 대회를 앞두고 다른 담당자에게 다시 똑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전문성을 갖고 행사를 뒷받침해 줬으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며 "제주 관광에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분야가 제주 음식인데 기후 위기 등 환경적 이슈가 커지는 현실에서 행정에 '미식팀'을 두고 제주의 좋은 식재료 등을 알렸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제주음식문화원을 운영 중인 부정숙 제주향토음식 명인은 "부모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알면 제주 음식이 새롭고 더 맛있어진다"고 말하는 이다. "인문학을 토대로 콘텐츠가 만들어진다"며 제주 미식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한 부 명인은 "향토음식만 해도 담당 부서 명칭이 몇 차례 바뀐 걸로 알고 있다. 제주 미식 관광 활성화를 위해 컨트롤 타워를 맡을 부서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끝>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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