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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최근 기후로 인한 재난이 잦아지고 있다. 제주는 물론 한반도, 그리고 세계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다. 재난은 폭우와 강풍으로 마을을 무너뜨리거나, 반대로 오랜 가뭄과 폭염으로 대지를 갈라지게 만든다. 결국 흙과 물, 불과 바람이 균형을 잃을 때 재난은 모습을 드러낸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대지와 물, 불과 바람)은 인간의 몸을 이루는 네 가지 기본 성질이지만, 동시에 자연과 우주를 지탱하는 근본 요소로 확장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유가 특정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 보편의 사유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역시 흙, 물, 불, 공기라는 네 원소를 세계의 근본으로 보았고, 그것이 사랑과 투쟁이라는 힘에 의해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교류가 없던 시대에 동서양이 공통적으로 네 가지 원소를 떠올렸다는 것은 놀랍고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오래된 직관이 문화와 경계를 넘어선 증거이기도 하다. 지수화풍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존재 조건이었다. 인류가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공통의 토대였으며, 그 자체로 평등한 자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도시 공간은 물론 농지마저 소수 자본에 집중돼 축적과 투기의 대상이 됐고, 인간 생존의 기본 조건인 물도 부족 단계에 접어들었다. 산업화와 개발은 끝없는 편리와 이익을 좇으며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소비해 왔다. 에너지는 끝없이 배출되면서 결국 바람과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모두가 마시는 공기가 더럽혀지고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으며, 기후 시스템 자체가 심각하게 교란되고 있다. 이제 태풍, 홍수, 폭염, 가뭄 같은 재난은 예측조차 어렵고,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본래 누구에게나 공평했던 흙, 물, 불, 바람은 우리의 탐욕과 집착 때문에 파괴되고 균형을 잃어가며, 기후 위기라는 무서운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구의 일부이고, 한반도의 허파인 제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농부는 자기가 사는 동네, 자신이 농사짓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세상을 판단한다. 태풍에 작물을 잃고, 흙이 쓸려 내려가는 현실을 목격한다. 이어지는 무더위를 두고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단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조상들도 겪지 못했을 새로운 상황일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 더 큰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망만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흙과 물, 불과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삶의 토대이자 곁에 존재하는 조건이다. 평등하게 누려야 할 모두의 것이다. 어쩌면 가장 더웠던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정녕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없는 것일까.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장·농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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