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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최근 수년 사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일이 몇 차례 있었다. 드디어 망가졌다. 때마침 스마트폰에 깔린 은행 앱에서 유효기간이 만료되니 내가 나임을 새롭게 증명하라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내 폰의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가족의 폰으로 내 신분증을 찍어 나에게 전송한다. 내 폰으로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라 나라고 인정되지 않는다. 이리저리 몇 차례 시도하는데 내 스마트폰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나를 입증할 수 없다. 이럴 수가. 짜증을 넘어 기묘한 공포가 올라온다.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없다니! 인공지능(이하 AI)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편리함과 유용함으로 우리의 지식과 수행 능력을 높이며 시간과 비용을 아껴준다. 점차 아니 이미 우리 대신 AI가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를 앞서간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근대 이후 물질의 풍요와 편리와 아름다움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세상을 지배해 왔다. 너도나도 부자를 꿈꾸는 갈망과 소비의 쾌락을 연료로 지구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이상기후가 일상이 됐다. 지구 곳곳에서 산불과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간의 물리적 생존의 위태로움, 더욱 벌어지고 고착화되는 빈부격차, 정치·종교·민족·성별에 따른 분열의 심화,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파시즘의 불길한 부상, AI 발전에 따른 인간 쓸모의 위기라는 위협적인 과제들이 이 허물어져 가는 세상에서 우리 앞에 던져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제 병원을 방문했던 한 여중생의 이야기가 먹먹하게 남아있다. 그녀는 자해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팔목을 가린 채 힘없이 앉아있었다. 나무를 그려보라는 나의 제안에 작은 나무 하나를 그렸다. 나무의 상태를 물으니 병들어 죽었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 이 나무는 병들고 죽게 된 거야?" "사람들에게 밟히고 차여서요." "왜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밟고 차는 거지?" "널린 게 나무라서 이런 나무는 너무 흔하거든요. 특별할 게 없어요. 그래서 소중하지 않아요." 이제 우리는 다른 잘난 사람에게 뒤질 뿐 아니라 AI에게 턱없이 밀린다. 또다시 AI 기술을 두고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 기존 질서가 붕괴되며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는 이 혼란의 시기는 커다란 위기이자 가냘픈 가능성의 시간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이자 유일한 희망은 공생이다.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내 편과 적의 익숙한 이분법적 사고로는 이 혼돈을 통과할 수 없다. 우리 삶의 목적은 남보다 앞서고 잘나게 되는 것이나 완벽한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선악시비가 섞이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삶과 죽음이 연결된 자연스러운 나다움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나와 세상을 구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한번 보시라.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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