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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배의 하루를 시작하며]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입력 : 2025. 07.23. 01:00:00
[한라일보] 병원 서쪽 녹나무에 다다른 안개는 무성한 잎사귀 그물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병자랑은 우리의 전통문화. "지랄, 그것도 병이냐?" 나무 아래에는 댓 명의 환자들이 서고 앉아 가장 아픈 환자는 자신이라고 열변 중이다. 저녁까지 거를 태세, 선웃음을 흘리며 나는 안개를 밀치고 병실로 향했다.

6월의 시작, 이른 장마와 함께 병이 훅 치고 들어왔다. 윗배 통증을 버티다 못해 결국 병원을 찾았다. 진단결과는 간담계질환, 이런저런 병으로 근래 세 번째 입원이다. '이러다 언젠가는 큰일 나지' 하면서도 생활에 절제가 없었다.

입원 후 바로 담낭배액시술을 받았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전화하며 우셨다. 어머니가 지난해 몹쓸 병으로 배액관을 달고 투병 끝에 돌아가신 뒤였다. 자식이 같은 시술을 받았다 하니 얼마나 황망하고 참담했을까. 수술로 완치되는 병이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긴 시간 설명한 끝에야 겨우 진정이 되셨다. 병실에 찾아와서도 축축한 눈으로 내내 사실인지 묻고 또 되묻고 하셨지만.

저녁 식사가 끝나고 병상에 몸을 뉘었다. 서너 살쯤 됐을까, 답을 듣지 못한 아이는 끝없이 물었다. "할아버지, 아파서 울어요? 그럼 할머니 못 봐서 울어요?" "웅웅" 대답은 언어가 되지 못했다. 입구 쪽 병상. 80 중반의 어르신으로 편마비라 하였다. 불편한 몸에도 자식들 고생 덜어준다며 매일 과수원에서 일하다 쓰러진 결과였다. 어르신은 수시로 울었다. 삶에 대한 회한과 끝일지 모른다는 공포였겠다. 저녁마다 자녀들이 찾아왔고 가고 나면 울음소리는 커지고 길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차도는 없었다.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며 재활전문병원으로 모셔갔다. 손녀는 팔걸이에 얹힌 할아버지 손을 잡았고 휠체어 속도에 맞추느라 뜀을 뛰듯 걸었다.

꺼졌던 병실 등이 켜졌다. 짐짓 멀쩡해 보이는 젊은 부부가 옆 병상으로 걸어왔다. 들어보니 아직껏 큰 병이 없던 남편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혼절로 입원한 터였다. 늦은 시간까지 간간이 아내와 소리 낮은 대화를 나누더니 자정이 넘으면서 증세가 시작됐고 삽시간에 나빠졌다. 간호사들이 분주히 들락거렸다. "아기 아빠야. 여보, 여기 봐! 자기야, 눈 떠봐!" 짧은 혼절이 잦아지더니 점점 기면이 길어졌다. 아내는 밤새 남편을 깨우며 울었다. 동이 채 트기 전, 그는 의식 없이 이송병상에 뉜 채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따라가는 아내의 울음소리는 통곡처럼 크고 길었다.

통원치료로 전환되어 병실을 나섰다. 돌아본 병원 유리창에는 나로 인해 일상을 멈춰야 했던 아내와 병원으로 퇴근하던 아이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함께 부서지는 존재들. 자칫하면 내 아내와 아이, 그리고 아버지. 그 안에 담긴 나와 당신의 모든 이가 산산이 조각나고 마는, 유리 속 세상에 살고 있었다.

녹나무 아래에는 환자들이 여전히 승자를 가리고 있다. 실금 간 유리 벽 안에서. <신순배 수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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