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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퀴어' [한라일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그저 향기로운 축복이라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한 냄새로 진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종종 아름답게 보여지기 위해 탈취된 채로 전시되곤 한다. 이상형과 이상향의 일치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하모니를 위해 맞춰진 퍼즐들은 때론 너무 꽉 끼어 있어 부자연스럽게 도 느껴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을 만난 이들이 권력자가 아닐 리 없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지는 게임이라는 비정한 시소 위에서 사랑의 무게로 주저 앉는 경험을 한 이들의 엉덩이는 영원히 무거울 것이다. 때로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져오는 나의 감각을 완전히 신뢰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빠지는 데 고작 3초면 판가름이 난다고 하는데 그 3초의 내가 나의 모든 세포를 대변할 만한 존재였을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즈 앤 올>등의 작품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과 매혹이라는 감각의 실체를 탐구해 온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퀴어>는 사랑이라는 신기루의 소용돌이를 향해 돌진하는 덧없고 애타는 실험이자 무수한 의태어로 구성된 길고 절절한 열병의 시다.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시야는 후각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무언가를 낚아 채기 위해 여념이 없다.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쿵쿵 거리는 동시에 킁킁 거린다.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가는 어디 쯤에 위치한 남자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복식을 갖추었고 근사한 모자와 안경으로 자신을 꾸민 채로 하염없이 다른 남자를 찾는다. 그는 굳이 잠복하지 않는다. 사냥감을 찾는 늙은 맹수는 멕시코의 태양 아래에서 그렇게 맹렬한 욕망으로 기꺼이 욕망의 땀에 젖는다.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기까지 그래서 그를 소유하기까지 그의 일상은 범상하게 반복된다. 목적은 명확하지만 성과가 분명하지는 않은 시간들이 이어지던 차에 그의 시야에 차마 이빨로 물 수 없는 고귀한 사냥감이 등장한다. 아름답고 불투명한, 단번에 그를 사로잡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도망치지 않지만 잡을 수도 없는 다른 남자 유진(드류 스타키)이. <퀴어>는 '사랑해'라는 고백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사랑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리는 유진에게 매혹된 채 끊임없이 그에게 접근하지만 명확한 음성 언어로 사랑을 고백하지는 않는다. 대신 눈동자의 격렬한 떨림과 코와 입이 내뿜는 더운 숨, 집요하게 유진의 육체로 향하는 리의 모든 신체 부위가 이 모든 것이 사랑이 아닐 리 없지 않냐고 반문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3부로 구성된 <퀴어>는 매혹에서 시작된 사랑의 원색이 어떻게 변색되는지를 부릅뜨고 지켜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쉽사리 낭만이라는 함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은 굴을 판다. 사랑의 수맥이라도 찾을 기세로. 그 이유는 투명하고 쓸쓸하다. 유진이 리를 리만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는 야헤라는 약초가 가진 성분이 두 사람 사이에 텔레파시를 만들어 줄 것으로 믿고 밀림으로 향한다. 어떤 힘을 빌려서 라도 사랑 받는 기분을 얻고 싶어서다. 그 기분을 반드시 유진으로부터 가져오는 것이 너무 간절해서다. 리는 유진을 발견하고 종종 소유하는 선에서는 그치지 못한다. 리는 유진의 육체 안에 숨은 감정의 전체를 발골하고 싶어한다. 우리의 지금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낱낱이. 때로는 사랑이라는 관계와 행위에서 '사랑 받는 기분'이 전부일 때가 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를 찾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단지 당신의 사랑 뿐이라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 주지 않는가. 왜 당신은 나를 원하지 않는가. 나는 멈출 수 없는데 상대가 멈춰 있는 것을 보는 일은 비극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는 이 비극을 단숨에 모험극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절절하게 끓어 오르는 영화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를 향한 낙담과 체념 대신에 기꺼이 이 감정의 원시와 원형을 향해 돌진하는 <퀴어>는 무수한 사랑 영화들 틈에서도 '퀴어'하다. '퀴어'는 동성애자를 뜻하는 단어인 동시에 기묘한, 괴상한 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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