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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문화광장] 라쇼몽, 진실은 하나인가?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입력 : 2025. 07.01. 03:30:00
[한라일보] 2차세계대전 시기 자살특공대, 참수, 할복, 반자이 돌격 등 서구의 시선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일본군의 잔인한 이미지를 상쇄하고, 그들도 문화와 교양을 갖춘 문화인임을 보여준 사건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의 195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다.

이 영화는 이후, 라쇼몽 효과와 라쇼몽 기법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동일한 사건을 같이 목격하거나 경험하더라도, 각 개인의 의도에 따라서 혹은 각 개인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기억하고 증언한다는 현상을 '라쇼몽 효과'라고 한다. 이것은 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인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다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지녀서 진실 공방으로 번져나가기도 하고, 과연 진리는 하나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현상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가 아닌 '왜 이렇게 다르게 기억하는가?'로 기억이 주관적으로 재구성된다는 인간 심리에 주목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범죄영화에서 흔히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 '하는 'whodunit'의 차원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선한가?',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라쇼몽 기법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각각의 등장인물의 과거 회상으로 각자의 기억에 의해서 사건이 상반되게 보여지는 기법이다. 미군 여성 헬리콥터 조종사가 위험한 전투 상황에서 부상자들을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구출했는지를 구출팀 대원들의 회상으로 구성해 '그의 행동이 진실인가?' 아니면 '은폐된 다른 사건이 있는가'를 다룬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1996)에서도 사용됐다.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의 '스네이크 아이'(1998)에서는 초반 20분에 가까운 스테디캠 시퀀스와 네 개의 플래시백으로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라쇼몽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염세적 태도를 취하는 감독은 스스로 사익을 취하고, 거짓말을 하는 나무꾼이 마지막에 어린 고아를 거두는 행동을 통해서,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일본이 항복한 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일본에 도입하려 했던 미군의 노력은 미국영화를 적극 상영하는 한편, 여성의 지위 향상에 대한 영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강간당한 사무라이의 아내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남편이 보여주는 경멸적인 태도에 절망해 남편을 죽이는 장면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나생문'(1915)을 배경으로 삼고, '덤불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엇갈린 진술 부분을 관가에서 진술하는 플래시백 구조로 만들어졌다. 두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단순하게 '누가 살인을 했는가'의 수준에서도 이해할 수는 있으나, 다양한 층위와 모호함이 존재해 다양한 영화 보기가 가능하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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