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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일보] 맨발로 제주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느덧 여덟 해. 그 길은 단지 흙 위의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햇살에 데워진 대지의 숨결, 숲을 지나며 스치는 바람, 해무 머금은 돌담의 기억이 발끝을 통해 마음 깊이 번졌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곧, 나와 자연 사이의 오래된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세상과 나 사이의 벽을 하나씩 허무는 일입니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자연의 촉감은 잃고 지내던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의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 촉감은 말없이 속삭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으라."고. 그때 비로소 삶의 소란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됩니다. 그것은 명상이었고, 치유였습니다. 심리학에서 '마음 챙김'이라 부르는 현재에의 집중은, 이처럼 자연과 맞닿는 순간에 깨어납니다. 걸음마다 지나간 후회도, 다가올 불안도 잠시 멈추고, 고요한 현재가 나를 감쌉니다. 의학에서도 걷기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치매 분야의 권위자 나덕렬 박사는 마지막 치료법으로 "좋은 공기 속 걷기"를 권합니다. 그중에서도 맨발 걷기는 몸과 마음이 다시 연결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땅을 딛는다는 건 단지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제주는 이 여정에 가장 알맞은 자연을 품고 있습니다. 숲길, 바닷가, 오름의 옛길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치유의 장소입니다. 조금만 손을 더하면 도민과 여행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생명의 길이 됩니다. 그리고 이 길은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교실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과 속도의 그늘 아래 있는 아이들, 정서불안과 고립으로 상처 입은 교실엔 이제 자연의 품이 필요합니다. 흙을 밟고, 바람을 느끼고, 나뭇잎의 흔들림에 귀 기울이는 순간,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감성과 공감이 자라납니다. 유럽의 숲 유치원이 그러하듯, 우리도 자연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전국 곳곳에서 맨발걷기 길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주의 자연 자산 위에 생태 명상길이 더해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정서문화를 바꾸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맨발로 걷는다는 건 결국,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입니다. 불필요한 욕망과 산란함을 내려놓고, 우리가 잊고 지낸 사랑과 고요, 감사와 평화를 다시 배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보다 먼저 걷습니다. 어른이 먼저 땅을 느끼고, 침묵을 배우고, 삶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맨발 걷기는 마음의 문을 조용히 여는 일이며, 자연에 몸을 기댄 채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이 작고 고요한 실천은 우리에게 삶의 여백을 선물합니다. 걸음마다 나는 조금씩 깊어지고, 길 위에서 나는 잊고 지냈던 나와 다시 만납니다. <양복만 제주영지학교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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