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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한라일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종종 제목들로 질문을 던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등 인상적인 제목들은 영화의 속내를 얼핏 짐작하게 하면서도 지칭하는 것들의 불명확함으로 인해 관객들을 더 깊은 생각의 계곡으로 향하게 한다. 이 여정에서 내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것이 꼭 우를 범하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우연히 들어선 숲에 꼭 필연이 있을 필요가 없기에 그저 눈 앞에 다가온 나무를 실컷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영화적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찾아 나서는 강행군을 각오할 필요 없이 뒷동산까지의 걸음의 모양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또 한 번의 경험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처음으로 제목 안에 미리 물음표의 자리를 만들어 둔 영화다. 삼십대의 시인, 그의 이름은 동화다. 그 이름이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으로 지은 이야기'라는 뚯인지 '밖으로부터 얻어 들인 지식 따위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듦'이란 뜻일지 혹은 전혀 다른 한자어의 조합일지는 모르겠다. 그 동화가 삼년 사귄 애인 준희와 함께 자신의 중고 프라이드 자동차를 몰아 준희의 집으로 향한다. 준희의 집은 자연 속에 지어진 큰 집이다. 그저 준희를 데려다 주던 길일 뿐이었는데 집 앞에서 준희의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 동화는 그 집에서 하루 종일 머물게 된다. 동화는 준희의 아버지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기도 하고 작은 뒷산에 올라 노을을 보며 막걸리를 마시기도 한다. 준희의 식구들과 함께 하는 식사와 대화, 근교의 절을 향하는 가벼운 드라이브와 길어지는 음주가 하루의 시간 속에 발생하고 준희의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시를 암송하던 동화는 그만 벌컥 차오르는 감정에 취하고야 만다. 만취해 잠든 동화는 불현듯 깨어 노을을 보던 곳의 달을 향해 나선다. 그 길에서 핸드폰 불빛으로 꽃을 비춰 보는 동화, 그가 암송했던 자신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꽃이 피네 밤에 꽃이 피네 꽃이 피면 환해지고 무섭지 않아요.' 그래서 자연은 동화에게 뭐라고 말을 한 것 일까, 우리는 영화 속에서 그 소리를 들었을까. 자연과의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얼마만큼의 순간이든 자연과의 동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늘 흐름 속에 멈춰서는 사람일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언어로 변환할 재료가 되는 삶의 미세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귀한 청음의 재능이 동화에게 있을까? 동화는 시력이 좋지 않지만 안경을 꼭 쓰고 다니진 않는데 영화는 해상도가 낮은 화면으로 동화가 보는 듯한 풍경들을 담아낸다. 자연을 끼고 앉은 준희 가족의 큰 집은 동화에게 매력적인 공간이다. 거기에는 동화가 꿈 꾸는 비 물질적인 삶의 부분들이 보이는 듯 하다. 자신의 시에 밤에 피는 꽃을 등장시킨 동화에게는 어쩌면 이 우연한 방문지가 삶의 종착지로 충분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불편할 수도 있는 애인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저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불충분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의 특징 답게 영화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관계의 정면과 이면을 꺼내어 부딪히게 한다. 자연의 소리에는 하염없이 귀를 열던 동화는 준희의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의 순간에서는 방음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득음 하지 못한 치기 어린 상태로 터져 나오는 자신의 말들을 방치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이야기에 끼어드는 온갖 소리들을 자연스레 함께 두는데 자동차 소리와 새 소리, 바람 소리와 바퀴 소리가 어우러져 섞여 든다. 시각보다 또렷한 청각적 요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소리들을 번역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을 시의 언어로 공들여 옮겨 놓은 동화에게도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사는 준희의 가족에게도 말은 오히려 서로의 거리를 어둡게 벌려 놓는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숲을 보려는 험난함을 택하는가. 그저 눈 앞의 식별 가능한 일부를 통해 상대를 일갈하는가. 호기심과 의심 사이, 추측과 단정 사이 어둑시니한 말의 숲길에서 동화의 오래된 차는 멈추어 서고 영화는 거기에서 끝을 맺는다. ![]() <진 명 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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