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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의 문화광장] 절반의 자연, 제주의 미래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5. 05.13. 01:30:00
[한라일보] 지구의 생물다양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지고 있다. 매일 수십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고, 이미 인간은 지구 생명체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야기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이어진다. 이에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지구의 절반 프로젝트'(Half-Earth Project)를 제안했다. 그의 주장은 명확하다. 지구 표면의 절반을 자연 상태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생물다양성의 근간이 무너지고 인류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지구의 절반을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면 생물종의 85%를 살릴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일부 보호구역을 늘리는 정도의 조치가 아니다. 기존의 개발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생명이 공존하는 새로운 구조로 전환하자는 생태적 선언이자 과학적 전략이다. 윌슨은 이를 단기적 이상이 아닌 실현 가능한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과학자, 정책가, 지역공동체들이 이 프로젝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제주다. 한라산, 곶자왈, 오름, 해안습지 등 제주에는 이미 풍부하고 고유한 생물다양성이 존재한다. 곶자왈은 용암지형 위에 형성된 독특한 숲으로,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동시에 서식하는 희귀 생태계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관광객 급증과 도시 확장, 도로 개발, 대규모 숙박시설 건설 등으로 인해 이 생태계는 점차 압박받고 있다.

'지구의 절반'이라는 개념을 제주의 환경정책에 적용한다면 우선 기존 보호구역의 재정비와 함께 생태 연결축 구축이 시급하다. 한라산에서 곶자왈, 오름과 해안까지 이어지는 생물 이동 경로를 복원하고, 중간 지역을 완충지대로 설정해 서식지 단절을 막아야 한다. 농지 전환지나 유휴지, 군사 보호구역 등도 새로운 보호구역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또한 보전은 단지 생태학적 행정이 아니라 문화적 실천이어야 한다. 밭담과 돌담, 마을숲 등은 제주 고유의 생태문화 자산이며, 이는 지역 주민의 삶과 맞닿아 있다. 개발과 보전이 대립하는 개념이 아닌, 공존 가능한 방식으로 결합될 수 있어야 한다. 마을 단위의 보전 참여, 생태관광, 환경예술 프로젝트 등 주민 참여형 모델은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기후위기 역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해수면 상승, 이상기후, 생태계 교란은 이미 제주의 해안과 농지, 마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탄소 흡수원으로서의 숲과 습지 보전, 생물종 적응 지원, 에너지 전환 등 장기적 전략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지구의 절반이라는 급진적 발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계획이다. 제주는 그 출발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절반의 자연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삶의 나머지 절반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제주에서만은 절반의 자연을 지키는 정책이, 활동이, 행사가 펼쳐지는 날을 상상한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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