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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의 문화광장]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건축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5. 04.22. 00:30:00
[한라일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굳이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제주민에게 4월은 4·3의 비극과 세월호 참사가 기억되는 가슴 아픈 달이다. 거리마다 벚꽃이 만개하고 새 생명이 움트는 축제의 도시 풍경이지만, 내면의 한구석에서는 생과 사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 더불어 일상에서 잊혀 있었던,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도시공간과 건축의 기억을 소환한다.

건축가들의 도시 탐험에서 빼놓지 않는 일정이 화장장이나 묘지의 건축답사다. 도시공간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역이 어떻게 상호 관계하고 공존하고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그 도시의 품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둘러본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좀처럼 잊히지 않는 두 건축이 있다. 베를린의 '바움슐렌베크 화장터(Baumschulenweg Crematory)'와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톡홀름의 '우드랜드 묘원(Woodland Cemetery)'이다.

2006년 '바움슐렌베크 화장터'의 홀에서 느꼈던 감동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어둠 속에 불규칙하게 서 있는 원형의 열주들이 빛이 쏟아지는 천창 속으로 사라지는 극적인 장면은 시적 울림이 대단했다. 천상으로 솟아오른 열주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연결하는 장치로써, 조문객은 그 경계에 서서 이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 하나의 공간으로 베를린 시민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2013년 답사했던 우드랜드 묘원은 건축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름다운 묘지공원 중 하나이다. 스웨덴의 건축 거장 '군나르 아스플룬트(Erik Gunnar Asplund)'가 설계한 화장장 건축도 훌륭하지만, 친구인 '시구르드 레베렌츠(Sigurd Lewerentz)'가 계획한 묘지공원의 공간 시퀀스는 더욱 압권이다. 인공 언덕인 '회상의 숲'에 올라 죽은 자를 기억하고, 888m의 '세븐 스프링 웨이'를 걸어 '부활의 예배당'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한 경건한 이별, 예배 후 다른 길을 걸어 나오며 다시 산 자의 일상으로 회귀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공원이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답사가 목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장소로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이 두 건축이 감동적인 이유는 죽음을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삶과 죽음의 영역이 존중의 태도로 공존하여 품격의 공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일상은 어떠한가? 죽음에 대한 제주 고유의 풍경은 토지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명분에 의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특히 망자와의 이별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장례식장들은 일방적으로 산 자들만의 건축으로 치닫고, 도시의 혐오 시설 처지에 놓여있다. 이제 제주 곳곳의 장례식장들도 죽은 자의 삶을 축복하고 평온한 안식을 기원하는 경건한 이별의 장소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벚꽃이 떨어져 더욱 잔인한 4월의 말미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성찰적 건축의 출현을 기대한다. <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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