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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의 월요논단] 도립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 유감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5. 04.21. 03:30:00
[한라일보] 2023년 '미술진흥법'이 제정돼 미술진흥을 위한 법률적 장치가 강화됐다. 하지만 국내 다수의 공립미술관들은 여전히 법·제도와는 별개의 길을 가고 있다. 그 결정적 사례의 하나가 소장품 구입 예산의 전액 또는 대폭 삭감이라는 처방이다.

최근 전국의 도립·시립·구립미술관 중 작품 구입 예산을 제로화시킨 곳이 적지 않다. 이는 미술관의 업무의 핵심인 미래 문화유산의 수집과 보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소장품 연구에서 전시에 이르는 활동을 약화시키고 미술관의 정체성 저하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르면 미술관은 소장품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제2조(정의)를 보면 미술관이란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명기돼 있다. 이 법령에 비추어 볼 때 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을 제로화는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마비시키는 일이다.

예산 삭감의 여파는 해당 미술관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약화하고 생계의 어려움을 심화하는 원인이고, 지역 미술시장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증으로 소장품 수를 늘리려는 생각은 청년 예술가에 대한 기관의 폭력과 다르지 않다.

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제주도립미술관의 경우, 2009년 개관 이후 3억원 규모의 소장품 구입 예산이 책정돼 지난 2023년까지 980점의 작품을 수집해 왔다. 그러나 2024년 전액 삭감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지역 언론과 미술인들의 노력으로 올해는 본예산이 부활됐으나 분관을 합해 2억원을 넘지 않았다. 경기도미술관도 소장품 예산의 생멸을 반복하다가 지난해 2억원 이하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경기도 산하 7개 뮤지엄 예산 10억원 중 일부다. 이외에도 지난해 기준 국립현대미술관이 47억원, 서울시립미술관이 14억원으로 공시됐고, 부산·광주·대전·울산시립미술관의 경우 5억원 규모의 소장품 구입 예산이 책정됐다.

공립 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지방자치단체 의원들과 지역민들의 미술관 컬랙션에 대한 인식 제고가 시급하다. 국가는 민간 기부 및 후원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개인이나 기업의 미술관 기부 및 후원을 장려해야 한다. 미술관 스스로도 전시, 교육프로그램, 아트 상품 판매 등 자체 수입을 확대해 작품 구입 예산에 충당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예산 이월이 가능한 소장품 기금제 방식을 채택해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심각한 예산 부족으로 인해 작품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미술관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문제라는 인식 아래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 <김영호 미술사가·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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