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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에서 '쿠로시오 해류' 따라 제주로 건너온 신화·사람 한국의 대표 해양문화 '제주 해녀' 고려 시대부터 기록돼 제주-일본 교류의 확실한 증거, 전복… ‘전복문화권’ 제안 [한라일보] 사회학자인 조성윤은 올해 나온 잡지 '뮤지엄 오퍼스(3권 제주)'에 실린 글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역사 자료에는 탐라국 사람들이 소와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고 상업 활동을 활발히 한다는 표현은 자주 나오지만, 농사를 짓는다는 표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같은 문단의 말미엔 "결국 제주 해민들은 오랫동안 수산업에 종사한 경험을 지닌 데다 배를 건조할 수 있는 목재도 풍부했고, 건조 능력도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 역사적 기록의 여부와 관계없이 해양환경을 바라볼 때, 아주 오래전부터 가까운 일본 그리고 류큐 열도와 중국과 교류가 잦았음이 틀림없다. ![]() 제주 해녀의 이미지는 제주도 디자인의 핵심 개념이자 브랜드 가치이다. 사진 장남원 바닷고기와 돼지, 사람도 바다를 건너와 제주도는 섬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지만 과거 육지에서 볼 때는 항상 절해고도였다. 외딴섬, 세상과는 격리된 곳처럼 보이고, 섬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갇힌 공간이었으나 주민 누군가는 이상향을 향해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가 만들어졌다. 문화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자취, 즉 살아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섬의 문화는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화가 고립되어 전승되었다. 허남춘은 책 '바다에서 바라본 제주바당-해양 제주(2020)'에 실은 그의 칼럼 '신화 속 해양 제주'에서 "섬은 신화나 신앙체계도 다르고 문화 인식도 다르다고 했다. 한반도의 신화는 천상에서 하강한 신의 내력이 위주인데 제주 신은 땅에서 솟아난다. 그리고 그 배우자는 대개 바다를 건너온다."라고 덧붙였다. '건너온다'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 제주 해녀는 수백 년 동안 제주 바다에서 생태계 일원으로서 어업을 해왔다. 사진 김병일 앞의 책의 저자들은 문화도 그 해류가 날랐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오갔을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또 18세기에 작성된 것이긴 하나 장한철의 '표해록'과 정운경의 '탐라문견록'을 통해서 표류에 대한 기록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기록들은 역설적으로 안전한 항해가 가능했음을 잘 보여준다. 주강현은 위 책의 기조문(keynote)에서 제주도의 문화를 '돼지고기와 흑우의 문화권'이라 하였고, 또 '해녀와 잠수어업' 문화권이라고도 했다. 잠수어업은 남방에서 온 것이라 하였으며 해녀도 독창적인 문화가 아니라고 했다. 과연 그런가? ![]() 제주 바다 수심 20m 바위 위에 서식하는 대형 전복. 사진 김병일 한국 해양문화의 대표 '제주 해녀 어업' 제주도의 대표 해양문화라고 할 수 있는 '제주 해녀 어업'은 '국가 중요어업유산 제1호(2015)'이며, 2016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면서 201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132호'로까지 지정되었다. 그러니까 해녀는 국가의 대표 유산이자 전 세계를 대표할 만한 문화인 것이다. 1791년 전남 평일도를 찾은 위백규가 적은 기행문 '존재전서' 중 '금당도선유기'에는 '해녀채복(海女採鰒)'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에 제주 문인 고훈식은 글 '제주 해녀'에서 "해녀라는 말이 일본잔재라서 껄끄럽다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썼다. 그런데도 제주에서는 과거 '잠녀(潛女)'나 '잠수(潛嫂)'로 널리 불렸음을 여러 기록에 찾을 수 있다. 제주 해녀의 존재는 12세기 초인 고려 시대 기록에도 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김상헌의 '남사록(1601)', 이건의 '제주풍토기(1630년경)', 이형상의 '탐라계록초(1702)' 등에도 그녀들의 활동상이 남아있다. 이 시기에는 제주도뿐 아니라 남해안 일원에서도 해녀어업이 행해졌음을 위 위백규가 남긴 글과 정약용이 유배지 경남 장기현에서 쓴 시 '아가사(兒哥詞)'에서도 나타나 알 수 있다. ![]() 제주 해물탕에는 오분자기가 없지만, 한 식당에서는 여전히 '오분자기 해물탕'을 팔고 있다. 사진 제종길 ![]() 제종길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수석위원·제주바다포럼 고문 제주 바다 환경과 향토 음식의 연계성을 알아야! 앞의 책에 실린 김경주의 칼럼 '선사 고대 제주도의 해양고고학적 궤적'이나 홍기표의 칼럼 '동아시아 해상왕국으로서의 탐라'에서 잘 알 수 있고, 특히 같은 책의 '별과 항해의 주인 성주(성주)'에서 바다를 통한 왕성한 교류에 대한 확신이 더 선다. 제주도가 한반도 외에도 일본과도 교류가 활발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였다. 일본으로 가져간 '탐라복 6근(六斤)'이라고 적혀 있는 745년의 목간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주된 어업 목표는 '전복'이다. 주요 교류 품목이 전복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 전복 중에서도 크기가 큰 전복들인 '말전복'과 '왕전복'이 핵심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기하게도 일본에서 해녀 어업이 활발했던 해역과 두 종의 분포가 잘 일치한다. 이 두 종은 바로 제주도와 혼슈 연안의 고유종이자 귀하디귀한 수산물이었다. 적어도 수백 년 동안 해녀들은 연안 생태계의 일부였고,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하면서 어업을 하였다. 이 일대를 '전복문화권'으로 제안한다. 이곳이 해녀의 발상지는 아닐까? 이들 생물이 사라지면 음식을 비롯한 해양문화도 사라진다. 국내외 사례도 많다. 또한, 위기다. <제종길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수석위원·제주바다포럼 고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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