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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41] 2부 한라산 (37)한라산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
‘한라’ 모든 생명을 창조한 최고 신, 성스러운 산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3. 05.16. 00:00:00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
공통의 최고신 지칭어




[한라일보] 한라산이라는 산 이름 기원을 추적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할르' 혹은 '할'이라는 말 뿌리는 한라산과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제시한 '할르'의 어원 외에 투르크어 권에서 카이날이라는 신이 있는데, 이 이름의 '칼' 부분은 '하늘'을 나타내고 '날'은 태양과 달을 나타낸다. 하늘의 빛이다. 신명 카야라칸은 '천국'을 의미하는 고대 투르크어에서 투르크-몽골 세계로 왔다고 보는 것이다.

투르크-몽골 신화의 할르한은 최고 신의 이름이다. 투바 신화에서 하일라칸은 존경하는 신의 이름이다. 하카스 신화에서 텡그리 카이라칸은 생명의 창조자로 나온다. 그는 9개의 가지로 성장하는 나무를 만들었다. 그 아래서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9개 부족을 창조했다.

티베트에 있는 카일라스산으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성산으로 여긴다.(위키미디어 제공)

"카이라칸이라는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우리 알타이인들이 천둥이 칠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 또는 나쁜 꿈을 꿀 때 카이라칸을 부른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어느 샤먼의 말이다. 카이라칸이라는 호칭이 구체적인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형태의 신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오르혼 부리야트 사람은 "가장 위대한 신을 에에 할르한이라고 부릅니다. 에에 할르한은 모든 신, 사람, 동물, 땅과 하늘의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할르한이 아아 할르한이나 에에 할르한처럼 변형하면서 몽골어권 전체에 널리 퍼지고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한라산과 관련해 주목되는 부분이다.

할르한은 사얀-알타이고원에 정착한 고대 투르크 부족에게도 신이다. 이와 관련해 투르크어에서 몽골어로 전파됐다거나 그 반대로 투르크어가 몽골어를 차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 외로도 공통기원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투르크어에서 k나 q로, 몽골어에서 kh나 x로, 동쪽으로 갈수록 점차 h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몽골 내에서만 944개의 한라산


티베트 고원에 해발 6714m의 카일라스산이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 수미산으로 간주해 신성시한다. 힌두교에서는 시바 신이 사는 곳, 자이나교에서는 첫 번째 부처인 리샤바나타가 열반에 든 땅, 티베트 전통 종교인 뵌교에서는 우주 산으로 여긴다. 산 이름은 소중한 눈의 보석이라거나 수정이라는 뜻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한라산과 같은 어원이다.

제주도의 상여, 용마루에 뱀 모양 조각으로 장식했다.(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전시품 촬영)

또한, 몽골 영토에서 할르한이 들어간 산 이름을 세어 본 학자가 있다. 무려 944개의 산 이름을 기록했다. 그중 56개는 할르한 올이다. 이 이름이 없는 아이막은 21개 아이막 중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런 정교한 분석을 시도한 사례는 없지만, 투르크어권, 몽골어권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는 건 동유럽, 티베트, 인도,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중국 등에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사례는 백록담의 어원에 '노르'가 들어있고, 이 말은 거의 전 아시아에 퍼져 있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지명이란 민족의 이동과 함께 이동한다는 것이 언어학계의 일반적 관점이다. 그러므로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할르한 또는 할라한이었던 것이 할르한 산 혹은 할라한 산으로 됐을 것이다. 이것이 점차 발음의 중복과 유사성 때문에 할락산, 하로산, 할로영산 등으로 됐을 것이다.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이두식 표기법을 빌려 한라산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참고로 할르한을 중국어로는 해이한(海汗)으로 표기한다. 중국판 한라산(漢拏山)이다.

그런데 몽골에는 산과 관련해 아주 특별한 습속이 있다. 그것은 산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는 것이다. 산이 보이지 않거나 (다른 산으로 가려진 경우) 산을 가린 그 산 바로 앞에 놓인 유르트 안에 있는 경우에만 발음할 수 있다. 그 외에서는 속삭이듯 발음할 수 있다. 마치 자식이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름 대신 할르한이라고만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라산은 한라산이라고 부르는 집단이 처음부터 할르한 올이라고 불렀거나 이미 앞선 집단이 불렀던 이름을 반영하여 '두무 할르한 올' 혹은 '가마 할르한 올' 등으로 불렀을 것이다. 이런 것이 점차 두무나 가마 같은 산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불경스럽다해 이를 생략했을 것이다. 이게 세월이 흐르면서 '한라산'으로 고착된 것이다.





독특한 제주도 샤머니즘 전통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몽골에는 뱀에 금기가 있다. 뱀을 묘사한 서부 몽골 암각화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뱀은 고비 사막의 고대인들에게 두려움뿐만 아니라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뱀에 대한 고대인의 숭배는 나중에 무속 의식, 복식 및 무당 액세서리에 반영됐다. 남부 시베리아 민족의 샤머니즘 전통에서 뱀은 지하 세계 혹은 물 세계와 인간 세계 사이의 매개자 역할을 한다.

뱀에 대해서도 다른 많은 숭배 동물과 마찬가지로 직접 이름을 지칭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할르한 즉 신이라고 하거나 긴 신, 물 정령의 매개자, 긴 벌레, 긴 혀가 있는 신, 알록달록 밧줄 같은 완곡어법을 쓴다. 제주도에 널리 퍼져 있는 칠성 신앙은 특별히 별과는 관련도 없는데 왜 칠성 신앙이라고 할까? 뱀 신을 모시는 이 신앙은 뱀을 북두칠성의 모양과 연관시켰던 건 아닐까? 뱀 신이라고 하는 것이 불경스러우니 칠성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한라'란 숭배하는 신에게 붙이는 최고의 존경어다. 오, 성스러운 산이시여! 같은 뜻이다. 한라산은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고대인, 한라산을 한라산이라고 불렀던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한라산이라는 지명 외에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길이 전승하기 위해 남겨 놓은 비밀의 코드를 우리만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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