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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실 한 곳 올리면 줄줄이"… 논란에도 손 못 쓰는 행정
[한라포커스] 장애아 가정 부담 못 더는 '발달재활서비스' (하)
도내 서비스 기관 1회당 단가 최대 6만2500원 인상
'담합' 의혹에 "치료비 부담 줄여 달라" 서명 운동도
서비스 기관 지정 후에 가격 올리면 제재 수단 없어
"시장에 맡겨선 안 돼… 가격 관리 등 기관 점검해야"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3. 02.02. 15:30:53

제주지역 발달재활서비스 제공 기관 대부분이 올해 1회당 서비스 단가를 최대 6만2500원으로 일제히 올리면서 '담합' 의혹이 불거졌다. 그래픽=한라일보

[한라일보] 정부의 발달재활서비스 대상인 제주지역 장애아동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699명. 이들에게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기관 대부분이 올해 1회당 서비스 단가를 최대 6만2500원으로 일제히 올리면서 '담합'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에 일부에선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애아동의 발달재활 치료비 부담을 줄여 달라'는 온라인 서명운동도 시작됐다.

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제주 발달장애아 부모 모임인 '제주아이 특별한 아이'의 박정경 대표는 "정부의 지원금으로는 월 4회(1회당 서비스 단가가 6만2500원일 때) 밖에 치료를 받을 수 없는데, 나머지 횟수를 자부담으로 받으려고 하면 1회당 비용을 더 비싸게 받는 기관도 있다"며 "그러다 보니 월 8회기의 치료가 필요한 아동도 이를 4회로 줄이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활치료비가 저렴한 도내 복지관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길게는 3~5년까지 대기해야 한다"며 "사설 치료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서비스 단가가 한꺼번에 오르며 더 힘들어졌다. 일방적인 치료비 인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장애아 부모와 서비스 기관 모두를 위한 '현실에 맞는 치료비'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아동의 발달재활 치료비 부담 경감을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 사진=제주아이 특별한아이

단가 인상 요인 복합적… 치료 인력 수급 문제도

발달재활서비스 단가 인상에는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다. 우선 도내 서비스 제공 기관은 치료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최근 물가 상승에 더해 언어재활사 등 서비스 제공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일부 기관에선 도내 '구인난'으로 육지부에서 인력을 수급해 기숙사비와 체재비 등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눈치를 안 볼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한 기관이 서비스 단가를 올리면 나머지 기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일명 '세션비'라고 불리는 급여 구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서비스 기관과 채용 인력은 1회당 서비스 단가를 5대 5, 6대 4 등 정해진 비율로 나누는데, 단가가 올라가면 그만큼 받는 금액도 늘어나게 된다.

제주시에 있는 한 발달지원센터 관계자는 "(기관마다 서비스 단가가 조정되는) 연말, 연초에 이직률이 가장 많다"면서 "기존 인력이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다른 기관과 서비스 단가를 비슷하게 맞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육지에선 1회당 서비스 비용을 7~10만원까지 받기도 하는데, 제주에서도 그 단가를 쫓아간 경향이 있다"며 "한 기관이 올리면 다른 곳도 줄줄이 따라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장애아동가족지원 사업 운영 지침'의 일부. '제공기관은 서비스 단가를 매년 12월말까지 지정 시·군·구에 보고해야 한다(변경시에도 보고)'라고만 돼 있어 행정에선 각 기관이 단가 인상을 알려오면 이를 그대로 '공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가 인상 거부 권한 없어"… 행정도 '난감'

서비스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현실은 분명한 문제다. 자칫 '담합'에 눈감아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장애아동가족지원 사업 운영 지침'을 보면 정부는 시·군·구가 서비스 제공 기관을 지정할 때 해당 지역의 시장가격과 전년도 바우처 가격, 타 지역 가격, 제공 인력의 자격과 경력 등을 고려해 적정 단가를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정 이후의 단가 인상에 대해선 별도의 관리 방안을 두고 있지 않다. 이 지침에는 '제공기관은 서비스 단가를 매년 12월말까지 지정 시·군·구에 보고해야 한다(변경시에도 보고)'라고만 돼 있어 행정에선 각 기관이 단가 인상을 알려 오면 이를 그대로 '공고'하는 상황이다.

제주시 관계자는 "서비스 제공 기관이 해당 지침을 근거로 12월에 단가 변경이 가능하다고 요구해 오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현재로선 승인이 아닌 (변경 단가) 고지의 의무만 있다. 단가를 인하 또는 동결해 달라고 하지만 일종의 권고뿐이어서 따라주는 곳도,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만 맡겨선 안 돼… 기관 점검 등 나서야"

지금처럼 발달재활서비스 단가를 시장에 맡기는 구조에선 장애아의 재활치료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막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행정 당국이 나서서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연구원 제주사회복지연구센터 오윤정 전문연구위원은 "발달재활서비스는 정부 지원금이 주어지는 공공서비스적인 성격이어서 행정적인 제도 개선으로 기관 점검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제주도에는 이미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조례'와 '장애위험 영유아 발달지원 조례'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례 개정이나 행정 지침 마련을 통해 기관이 서비스 단가를 인상할 때도 승인을 받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러면서 "보건복지부의 지원금에 더해 제주도 자체 신규 사업으로 장애아 부모의 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면서 "서비스 단가 인상의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는 기관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 대책으로 처우 개선비 제공 등의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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